"사죄 먼저" vs "정상회담 환영"... 日 기시다 방한에 둘로 나뉜 시민사회

입력
2023.05.07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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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방한 맞춰 대통령실 앞 보혁 집회
진보 "굴종외교 규탄"... 보수 "우의 계기"

7일 일본 총리로서 5년여 만에 한국을 찾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방문에 시민사회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진보진영은 퍼주기 대일 외교를 규탄하며 한일 양국 정부를 동시에 비난한 반면, 보수단체들은 한일관계 개선의 이정표가 마련됐다며 기시다 총리의 방한을 높이 평가했다.

정의기억연대 등 611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평화행동은 “윤석열 정부는 3월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굴종 외교를 한 이후 바뀐 게 없다”면서 “당장 일본에 역사왜곡 교과서, 독도 영유권,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강제동원 및 위안부 문제에 관한 입장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석자들은 “기시다 총리 방한을 규탄한다” 등의 구호도 연신 외쳤다.

한일 간 최대 미해결 현안인 강제동원ㆍ위안부 피해자 지원 단체들도 한목소리로 정상회담을 비판했다. 회견에 나온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위안부 피해자 분들의 나이가 모두 95~100세에 달해 인생 황혼기에 접어들고 있다”며 일본 정부에 진정 어린 사과와 법적 배상을 촉구했다.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을 대리하는 임재성 변호사도 “한국 정부가 여전히 손을 놓고 있는데, 강제동원ㆍ위안부 문제를 놓고 일본에 사과를 요구하는 모습이 선제적으로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생들도 거리로 나섰다. ‘2015한일합의파기를 위한 대학생 공동행동’은 앞서 오전 같은 장소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청년들은 역사문제를 팔아 얻은 돈을 받을 생각이 없다”며 정상회담을 직격했다. 이들은 직접 제작한 한일 정상회담 합의안에 ‘2015한일합의 파기’ ‘강제동원해법안 철회’ 등이 적힌 팻말을 붙이기도 했다.

보수진영은 맞불 집회를 열어 정부에 힘을 보탰다. 신자유연대는 원래 오전 서울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에서 예정됐던 집회 장소를 대통령 집무실 앞으로 바꿔 진보 집회에 대응했다. 단체는 “기시다 총리의 방문을 환영한다” “함께 가자, 같이 가자” “한미동맹 강화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4시간 동안 세를 과시했다. 양측의 물리적 충돌은 없었지만, 한때 집회 소음이 허용 최대치인 85데시벨(㏈)에 가까운 80㏈를 기록할 만큼 격렬하게 맞섰다.

보수단체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도 이날 오후 3시부터 서울 종로구 광화문 앞 인도에서 기시다 총리 방한 환영 집회를 개최하고 “고착화한 한일 양국의 우의를 다지는 계기가 됐다”고 반겼다. 회원들은 집회 후 서울시청까지 행진도 했다.

이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