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30)씨는 전맹(全盲) 시각장애인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오른쪽 눈이 보이지 않았고, 흐릿했던 왼쪽 눈마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자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망막박리, 세 번이나 수술을 했지만 '0'이 된 시력은 돌아오지 않았다.
김씨에게 지난달 20일은 특별한 날로 남게 됐다. 그날 제12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연세대 사회학과 입학 후부터 줄곧 꿈꿔왔던 변호사의 꿈이 실현된 그 순간, 깜깜한 세상과 마주하며 헤쳐나가야 했던 수많은 난관들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에게 변호사는 삶을 바꿔낼 수 있는 직업이었다.
누군가는 "공부가 제일 쉬웠다"고 했지만, 김씨는 공부가 쉽지 않았다. "시각장애인은 소리를 듣는 게 글을 읽는 겁니다. 저작권 문제 때문에 책의 원본 파일을 제공받아야 하는데, 저자들이 파일 유출을 우려했는지 잘 안 주더라고요."
2018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입학 이후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친구들이 기본서에 문제집까지 서너 권씩 풀어가며 실력을 쌓아갈 때, 진영씨는 메일을 쓰는데 시간을 보내야 했다. 유명 로스쿨 강사, 교수, 법조인에게 "교재 파일을 보내달라"고 호소해봤지만 처음에는 대부분 거절했다. 김씨의 노력이 통했는지 1년쯤 지나면서부터 교재를 지원해주는 이들이 생겨났다.
시험 보는 것 자체도 난관이었다. 첫 도전이던 2021년 장애인들은 연세대 또는 중앙대에서만 시험을 칠 수 있었다. 김씨에게는 연세대가 익숙했지만, 법무부는 그를 중앙대에 배정했다. "스트레스로 8kg이 빠질 만큼 건강이 나빠졌습니다. 한창 공부할 시점에 길을 외우고 있어야 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됐습니다." 결국 스트레스 탓에 2021년에는 시험장에 갈 수 없었다. 2022년에도 김씨는 고배를 마셨다. 합격 커트라인에 7점이 부족했다.
올해 시험도 순탄하지 않았다. 시험 도중 법무부에서 준비한 답안 작성용 노트북이 10번이나 꺼진 것이다. "한 문단, 한 문제가 날아간 적도 있었습니다. 법무부가 준비한 노트북 성능이 좋지 않아 시각장애인용 프로그램을 감당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개인 컴퓨터를 급하게 구하고 나서야 김씨는 시험을 계속 칠 수 있었다.
살인적인 시험 일정도 견디기 어려웠다. 변호사 시험은 5일간 치러진다. 중간에 하루만 쉬고 앞뒤로 이틀씩 하루종일 시험을 봐야 했다. 게다가 시각장애인들은 비장애인보다 시험 시간 자체가 1.5배 정도 길다. "비장애 학생들은 저녁 7시에 집에 갑니다. 저는 첫날부터 아침 9시에 시작해 밤 10시까지 시험을 쳤어요. 집에서 공부할 틈도 없이 시험을 치는 게 반복된 거죠. 비장애인에 비해 쉬는 시간도 짧았습니다."
김씨는 교재 지원부터 시험 일정까지 장애인들은 비장애인과 비슷한 조건에서 시험을 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장애인의 법조계 진출을 막는 건 장애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김씨는 특히 법무부의 각성을 촉구했다. "개선사항을 얘기해달라"는 한동훈 장관의 합격 축하 전화를 언급하며, 자신의 요청이 공염불이 되지 않도록 장애인을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시켜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정기관이 뭔가를 해주더라도 도움이 되지 않는 사례들이 많아서 장애인들과의 사전 협조가 필요합니다. 장관께서 장애인 목소리를 듣고 고충을 직접 챙겨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씨는 이달 말부터 태평양 산하 법무법인 동천에서 변호사로서의 첫발을 내딛는다. 김씨는 "변호사는 재판이든 입법이든 법을 파고들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직업"이라며 "특히 존재를 변호하는 변호사가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장애인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존재 자체가 지워진 사람들을 위한 변호사가 되겠다는 것이다. "차별을 겪으신 당신 곁에서 싸우겠습니다." '공익 법조계의 싸움닭'을 꿈꾸는 김씨의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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