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방미가 상당히 많은 성과를 거뒀지만 가장 괄목할 만한 성과는 역시 '워싱턴 선언'이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바와 같이 1953년 체결된 한미 상호방위조약은 재래식 무기에 기반하고 있다. 급증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감안하면 재래식 무기뿐 아니라 핵무기도 포함한 새로운 한미 방위조약으로의 업데이트는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윤 정부는 중단됐던 한미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를 재가동해 핵무기를 포함한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과정에 한국의 참여를 제고하는 방안을 논의해 왔다. 미국은 유럽의 나토(NATO) 동맹국과 아시아의 핵심 동맹국에 맞춤형 확장억제를 제공하고 있지만, 이를 명문화하고 있지 않다. 워싱턴 선언은 EDSCG에서 논의한 내용을 집대성해 정상회담 후 별도의 공동선언문에 명문화하고 이를 공개적으로 천명했다는데서 일단 큰 의미가 있다. 워싱턴 선언이 법적 효력을 갖는 조약은 아니지만 한미 정상 간의 공동선언문의 무게를 감안하면 제2의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버금간다고 할 수 있겠다.
당장 워싱턴 선언의 후속조치로 미국은 전술핵탄두를 탑재한 전략핵잠수함(SSBN)을 한반도에 자주 오래 배치하기로 했다. 한국이 SSBN 배치를 요구할 때마다 미국은 그동안 난색을 표명했었다. 북한을 과도하게 자극할 수 있고 배치에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SSBN은 수중에서 장시간 신속한 잠항(潛航)이 가능하기 때문에 북한이 미국 핵보복의 원점을 예측할 수 없다. 따라서 지상에서 전개되는 미국의 핵무기와는 또 다른 차원의 억제력을 제공할 수 있다. 저위력 핵탄두도 탑재하고 있기 때문에 임박한 북한의 핵공격을 선제적으로 정밀 타격하는 데도 효과적일 수 있다. 상시배치는 아니지만 북한의 핵위협을 더 강화된 확장억제로 대응하겠다는 미국의 공약을 실제로 실행에 옮긴 획기적인 조치다.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워싱턴 선언에 담긴 내용을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한미 핵협의그룹(Nuclear Consultative Group· NCG)을 발족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확장억제에는 재래식 무기, 미사일 방어(Missile Defense· MD), 그리고 핵무기가 동원된다. 이 중 핵무기, 즉 핵억제(핵우산)만을 별도로 다룬 한미 협의체를 발족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물론 미국은 유럽의 나토 동맹국과 핵기획그룹(Nuclear Planning Group· NPG)을 운영하고 있다. 나토의 '핵공유(Nuclear Sharing)'를 위해 1966년 발족된 협의체다. 윤 정부의 설명대로 한미 간 NCG가 원활히 가동된다면, 나토의 NPG보다 더 실효적일 수 있다. NPG가 나토의 31개 동맹국들 사이의 다자 협의체인 데 비해 NCG는 한미 간 양자 협의체다. NPG의 경우 미국·영국과 같은 소수 국가가 주도하고 나머지 국가는 사실상 소외돼 있다. NCG는 양자 협의체이기 때문에 한국이 의사를 표명하고 반영하기 더 유리한 구조다.
워싱턴 선언과 NCG 발족으로 한미 간 핵공유가 가동되는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이 나토의 유럽 동맹국과 핵공유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실제로 핵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공유 오피스' 나눠 쓰듯이 하는 핵공유는 없다는 말이다. 미국 국가안보실의 에드 케이건 선임국장이 핵공유의 기준이 '핵무기의 통제'(control of weapons)라고 했는데 현실과는 조금 동떨어진 주장이다. 나토의 유럽 동맹이 미국 핵무기를 통제할 권한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단지 미국의 전술핵이 유럽의 5개국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배치된 핵무기의 운반 및 관리에 유럽 동맹국이 일정 부분 통제 권한을 행사한다. 배치한 전술핵을 유럽 동맹국의 전략폭격기에 탑재해 전개하는 훈련을 하고는 있지만, 사용 권한은 전적으로 미국이 가지고 있다. 역내에 미국의 핵무기가 상시 배치되어 있는 상황은 장점일 수 있지만, 결국 관건은 핵무기의 전개 결정에 유럽 동맹국이 얼마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느냐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NCG의 경우에도 향후 관건은 앞으로 한국이 미국의 핵 운용에 얼마나 깊숙이 관여할 수 있느냐다.
워싱턴 선언으로 한미는 한층 더 강화된 확장억제를 제도화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한국의 자체 핵무장과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가 비현실적인 상황에 윤 정부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선언에서 한국의 핵비확산체제(NPT) 준수 의무를 명시했다고 핵주권을 포기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NPT 체제의 모범국가로서 한국의 의무를 재확인했을 뿐이다. 본 게임은 이제 시작이다. 윤 정부는 미국과의 후속조치를 통해 한국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강화된 확장억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