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의 역사는 약 2,000년이 넘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전지는 바그다드 전지로 기원전 약 25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 약 14cm, 직경 8cm로 작은 항아리로 구성되어 있다.
본격적인 전지 이야기는 개구리와 함께 시작하는 게 좋을 듯하다. 1786년 이탈리아 볼로냐대 해부학과 교수 루이지 갈바니의 아내는 개구리 수프를 만들려고 개구리 껍질을 벗겨 금속 접시에 가지런히 놓았다. 그때 개구리 뒷다리가 접시 안에 살아 있는 것처럼 경련을 일으켰고 이를 본 아내는 깜짝 놀랐다.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갈바니 교수는 개구리 뒷다리 실험을 계속했다. 갈바니는 이를 동물전기 현상으로 보았다. 우리가 아는 전기가오리, 전기메기, 전기뱀장어는 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거나 공격하기 위해서 전기를 사용한다. 전기뱀장어는 몸 양쪽에 있는 세 쌍의 발전기관에서 전기를 발생시킨다. 갈바니는 개구리의 신경을 다른 개구리 근육으로 건드렸을 때 금속을 전혀 이용하지 않고도 근육 수축을 관찰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죽은 개구리의 심장에 전류를 흐르게 하자 심장 근육 수축이 일어났다는 그의 관찰 기록은 오늘날 전기 충격으로 심장박동을 회복시키는 응급처치법에 사용되고 있다. 심장 리듬의 문제를 감지해 심장이 규칙적이고 제시간에 박동할 수 있도록 전기 자극을 보내는 장치인 심장박동기의 개발로도 이어졌다. 전류회로를 측정하는 전류계를 ‘갈바노미터’, 두 종류의 금속이 접촉했을 때 일어나는 자극을 ‘갈바닉 작용’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의 발견을 기리는 것이다.
이탈리아 파비아대의 알렉산드로 볼타는 이런 갈바니 실험에 의문을 가졌다. 그는 실험을 거듭해 동물 전기가 아니라 금속 사이에 일어난 현상을 동물 수분이 매개했음을 알게 되었다. 서로 다른 금속이 개구리 다리와 직렬로 연결됐을 때 개구리 근육이 움직인다는 것은 서로 다른 종류의 금속이 접촉해 발생한 전류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여기서 잠시 전류란 무엇인가를 알 필요가 있겠다. 모든 물질은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원자는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로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된 원자핵과 핵 주위를 궤도 형태로 둘러싼 전자로 구성되어 있다. 양성자는 양전하, 전자는 음전하를 띠고 있다. 양전하는 양성자가 전자를 끌어당기는 힘이고 음전하는 전자가 전자궤도를 벗어나려는 힘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궤도 바깥쪽에 있는 전자는 외부 힘에 의해 궤도를 이탈하여 원자들 사이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이러한 상태의 전자를 자유전자라고 한다. 이렇게 원자들 사이를 돌아다니는 자유전자가 전기의 기본이다. 자유전자를 잘 흐르게 하는 물질을 도체(conductor)라고 하며, 잘 흐르지 않는 물질은 절연체(insulator)라고 한다. 원자들 사이에 자유전자가 흐르는 것을 전류라고 하는데 이는 양에서 음으로 흐르는 것이다.
재질이 서로 다른 동전을 혀 위와 아래에 놓고 철사로 연결하자 찌릿찌릿 전기가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혀 대신 소금물을 적신 판지를 끼웠을 때도 전류가 흐르는 것을 목격했다. 전류가 동물의 생체조직이 아니라 금속과 습기에서 유래된 것이라 주장하며 금속전기라는 설명을 내놓았다. 이 원리에 착안해 볼타는 1800년 세계 최초로 전지를 발명했다. 이 원리를 이용해 구리와 아연을 묽은 황산 용액에 적신 전지를 만들어 내는데, 이것이 최초의 화학전지인 '볼타 전지'이다. 우리가 전압의 표기로 사용하는 '볼트(V)'가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아연판이 음극, 구리판이 양극, 묽은 황산이 전해액 역할을 하여 전구에 불이 켜지는 것을 확인했다. 이 실험은 전기가 통하려면 양극, 음극, 전해액 역할을 하는 재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 것으로 배터리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볼타 전지가 작동하는 원리는 금속들이 전자를 내놓으려는 정도가 다른 것을 이용한 것이다. 서로 다른 두 종류의 금속을 전자가 이동하면서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용액과 접촉할 수 있는 상태에 두자. 그러면 화학 반응이 일어나 두 금속 사이에 전자가 흐르는 힘이 생긴다. 도선을 통해 반응성이 큰 금속에서 반응성이 작은 금속으로 전자가 이동해 전류가 흐른다. 전류는 도체의 단면적에 초당 흐르는 전자의 개수로 정의하고, 단위는 A(암페어)이다. 전류가 흐르게 하는 힘을 전압이라고 한다.
일반 건전지는 일정 기간 동안 사용한 후에는 수명이 다하여 다시 사용할 수 없다. 반응할 수 있는 화학 물질이 거의 다 소모되었거나 전해질이 고갈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건전지를 일차전지라 하는데 배터리가 방전되면 다시 충전이 불가능한 전지다. 이에 반해 이차전지는 반복적으로 충전과 방전이 가능하다. 양극재, 음극재, 전해액, 분리막으로 구성된 이차전지의 대표적인 종류는 리튬 이온 전지다. 전기차뿐 아니라 노트북이나 휴대폰과 같은 대부분의 전자기기도 리튬 이온 전지를 사용하고 있다. 일차 전지가 전기화학반응에 의해 전류가 생기는 전지라면 이차 전지는 외부 전기에너지를 화학 에너지로 변환해 저장했다가 필요한 때에 전기를 만들어 쓰는 충ㆍ방전이 자유로운 반영구 전지다. 삼차 전지는 연료를 공급하면 전기를 계속 만들어 내는 전지인데 수소 전기차에 사용하는 수소연료전지가 대표적이다.
이차전지의 시작은 1859년 프랑스의 물리학자 가스톤 플랑테가 납축전지를 발명하게 되면서 역사가 시작된다. 납축전지는 용량대비 무게가 많이 나가는 단점이 있지만 가격이 저렴하고 많은 전기를 뽑을 수 있어 자동차 배터리에 많이 사용된다.
이차전지와 관련해서 에디슨의 전기차 발명 노력을 빼놓을 수 없다. 에디슨은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가 도입된 지 불과 4년 후인 1899년에 자동차에 적합한 배터리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는 전기 배터리가 가솔린보다 더 경제적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가솔린차와 경쟁하려면 수명이 길며, 추가 충전 없이 장거리 이동을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전력을 생산하고, 가벼운 배터리여야 한다. 1903년 그는 배터리 개발 과제가 끝났다고 발표했다. 에디슨은 당시 널리 사용되는 납산 배터리보다 훨씬 더 내구성이 강하고 덜 위험한 니켈 알칼리 배터리를 개발했다. 백열등에서 축음기에 이르기까지 그가 발명한 수백 가지 발명품 중에서, 배터리 개발 프로젝트는 가장 어려운 사업이었다. 납산 배터리보다 가볍다고 하지만 납 배터리보다는 더 크고 비쌌으며 충전 유지에도 문제가 있었다. 에디슨은 공장을 폐쇄하고 이후 3년 동안 더 비싼 재료를 사용해 배터리를 완전히 재설계했다. 그 결과 그가 내놓은 새로운 배터리는 성능과 힘이 좋았다. 품질이 향상된 것이다. 1910년까지 에디슨의 신 발명품은 뉴저지의 공장에서 대량 생산을 시작했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희생양이 되었다.
헨리 포드는 에디슨이 배터리를 완성한 지 1년 후이자, 대량 생산 준비를 시작한 2년 후인 1908년에 저가 휘발유를 사용하는 저렴하면서도 고품질인 모델 T를 선보였다. 모델 T는 미국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아 내연기관 시대의 도래를 이끌었다. 1824년 전기차가 처음 개발된 이후 1900년대 초반까지는 전기차가 모빌리티의 대세였다. 1900년 미국 전체 자동차의 3분의 1이 전기차였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겠나. 지금 내연기관이 전기차에 자리를 내줄 위험에 처해 있는 역사와 달리 전기차가 내연기관에 자리를 내준 역사가 아이러니하다.
사실상 에너지 법안인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통과됐다. IRA는 큰 과제를 던졌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해외 기업과 협력하거나 투자에 나섰으나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중국산을 쉽게 배제하지 못했다. 국내 배터리 업체가 선제적으로 북미에 진출한 것은 적절했지만, 원자재의 중국 의존을 낮추는 것은 숙제다. 메모리반도체보다 시장이 커질 이차전지 시장에 K배터리가 용틀임을 하고 있다.
조원경 UNIST 글로벌산학협력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