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정도 당한 '주가조작', 한탕이면 46억 원 챙겨

입력
2023.04.30 07:00
임창정도 당한 주가조작, 2007년 '루보 사태'와 유사
주가 40배로 뛰었다 11일 연속 하한가, 개미투자자만 당해
"지난해 주가조작 등 이상거래 부당이익 건당 46억원"
전문가 "한탕 수익 너무 커 몇년 살면 그만, 처벌 강화를"

최근 주식시장에서 여러 종목이 수일 동안 무더기로 하한가를 기록한 수상한 거래가 서서히 주가조작으로 드러나고 있다. 금융당국과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가운데 가수 임창정씨가 30억 원, 가수 박혜경씨도 1억4,000만 원을 주가조작 일당에게 투자했다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면서 파장도 커지고 있다. 아직 전모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유력 자산가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연루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한탕으로 큰돈을 거머쥐겠다"는 욕심이 만든 주가조작 사건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발생했다. 그중에서도 이른바 '루보 사태'가 이번 주가조작 의혹 사건과 유사하다. 특별한 호재 없이 서서히 주가가 올라섰다 단기간 폭락한 패턴이 나타나서다.

인천 남동구에 본사가 있었던 코스닥 상장사 '루보'는 자동차 등 여러 기계에 사용되는 베어링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으로, 2006년 10월 1,360원이었던 주가가 이듬해 4월 중순 5만1,400원으로 40배 가까이 올랐다. 루보의 주가가 2배 수준으로 올랐을 때인 2006년 11월 1일 한국거래소는 '주가급등 사유를 밝히라'는 조회공시를 요구했으나 루보 측은 "한국생산기술연구원과 공동으로 미끄럼베어링 제조방법에 관한 특허결정을 통보받았고, 특허권 취득 시 재공시하겠다(이후 11월 9일 특허취득 공시)"면서도 "그 외 현저한 시황변동(주가급등)에 영향을 미칠 만한 사항은 없다"고 공시했다. 그 이후에도 주가가 계속 오르자 거래소는 12월과 이듬해 1, 2월 세 차례 더 사유를 밝힐 것을 요구했으나 그때마다 루보 측은 "영향을 미칠 만한 사항이 없다"고 밝혔다. 요약하자면 뚜렷한 호재 없이 주가가 오른 것이다.

그러나 5만1,400원으로 고점을 찍은 2007년 4월 16일 검찰이 주가조작 의심 세력 계좌 동결 및 조사에 착수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후 루보 주가는 11일 연속 하한가를 기록하며 한달 만에 3,000원대로 폭락했다.


"2007년 '루보 사태', 임창정 당한 주가조작 수법과 유사"

검찰 조사결과, 다단계 업체 제이유(JU) 관계자들과 주가조작 일당이 제이유 회원들을 포섭하고, 투자설명회를 열어 일반인도 끌어들여 투자 명목으로 모은 1,441억 원으로 728개 계좌를 만들어 주가를 끌어올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작전세력들은 주가가 1만 원이 넘어간 2월부터 주식을 조금씩 팔아 치워 119억 원의 부당 이득을 챙겼고, 3월부터는 '개미'라 불리는 일반 투자자들도 가세하며 거래량이 크게 늘어나 5만 원도 돌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뒤늦게 뛰어든 일반 투자자들은 큰 피해를 봤다.

2010년에는 '다이아몬드 게이트'라고도 불리는 'CNK 주가조작 사건'이 불거졌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12월 17일 외교통상부(외교부)가 "사기업인 CNK가 아프리카 카메룬에서 추정 매장량 4억1,600만 캐럿에 달하는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권을 획득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한 게 발단이었다. 이는 2008년 기준 연간 전 세계 다이아몬드 생산량의 2.6배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었다.

정부가 사실상 사업성을 보증한 셈이어서, 정부 발표 직전 3,000원이었던 CNK의 주가는 20여일 만에 1만6,000원으로 폭등했다. 당시 별다른 매출도 실적도 없는 자본잠식 상태였던 CNK의 임직원들은 수십억 원의 시세차익을 봤다.

그러나 외교부가 발표한 추정매장량도 근거가 없다는 소문이 돌았다. 주가도 2011년 6월 6,500원 수준으로 추락했다. 그러자 외교부는 재차 보도자료를 냈다. 시장의 의혹이 해소돼 CNK의 주식은 다시 폭등, 1만8,000원을 돌파했다가 얼마 후 다시 폭락했다. CNK는 외교부의 두 번째 보도자료 발표 이후 시가총액 1조 원, 코스닥 7위에 오르기도 했다. 오덕균 CNK 대표도 6월(30만 주)과 8월(45만 주) 두 차례에 걸쳐 75만 주를 매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혹은 끊이지 않았고, 외교통상부는 보도자료 배포에 관여한 김은석 에너지자원대사를 보직에서 해임했다. 주가 상승으로 인한 시세차익이 정권 실세에게 흘러들어 갔다는 풍문까지 돌았다.

결국 감사원이 2012년 1월 당시 김은석 대사가 허위 보도자료 배포를 주도하고, 그의 동생과 측근은 정보를 입수해 시세차익을 챙긴 것으로 판단, 관련자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로 인해 주가도 2,000원대로 떨어졌고, 같은 해 3월에는 1,000원대까지 하락했다. 검찰은 2013년 2월 허위 보도자료를 외교부 명의로 2차례 배포하고, 이후 주가가 오르자 900억여 원의 부당 이득을 챙긴 혐의(자본시장법 위반 등)로 김 대사와 CNK 임원 등을 기소했다.

2017년 대법원에서 오 대표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확정됐으나 오 대표와 주가조작을 공모한 혐의로 기소된 김 대사는 1, 2심과 마찬가지로 무죄가 나왔다. 재판부는 산출 방식 등을 고려하면 CNK가 주장한 다이아몬드 추정매장량이 최소한의 객관적 근거조차 결여됐다거나 허위라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라고 봤다. 따라서 김 대사가 주도해 배포한 보도자료 내용도 허위가 아니며, 그가 주식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보도자료를 낸 것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기소된 주요 인물들이 집행유예와 무죄 판결을 받은 반면 CNK 주식은 상장폐지(종가 310원)되면서 역시 개미들은 큰 피해를 봤다.

"다이아몬드 4억 캐럿 매장" 외교부가 나섰다 주가조작 논란에

가장 최근에는 2021년 쌍용차(현 KG모빌리티) 인수에 나섰다가 주가조작 논란에 휩싸인 에디슨모터스 사건이 투자자들을 울렸다.

천연가스버스와 전기버스 등을 제조하는 에디슨모터스는 쌍용차 인수 자금 마련 통로로 삼겠다며 코스닥상장사 에디슨EV(현 스마트솔루션)를 인수했다. 그해 5월 28일 1,775원이었던 에디슨EV의 주가는 쌍용차 인수 기대감에 수차례 상한가를 기록하며 한달도 안 돼 1만3,479원(6월 16일)까지 올랐다. 이후 5,000~9,000원대를 오르내리던 주가는 무상증자, 쌍용차 인수합병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등 연이은 호재에 힘입어 같은 해 11월 장중 8만2,400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대주주의 먹튀 논란이 불거졌다. 에디슨모터스는 강영권 대표를 비롯해 지인 등으로 이뤄진 디엠에이치, 에스엘에이치, 메리골드투자조합, 스타라이트, 아임홀딩스, 노마드아이비 등 투자조합을 통해 에디슨EV를 인수했는데, 이들 조합이 주가가 급등하자 지분을 대부분 처분한 것이다. 이 기간 각 투자조합의 지분율은 5% 미만으로 공시 의무 적용을 받지 않아 투자자들은 이 사실도 알 수 없었다.

지난해 3월 28일 에디슨모터스는 쌍용차 인수 대금을 기한 내에 납부하지 못해 계약 해지 통보를 받게 되자 에디슨EV 주가는 폭락했다. 또 전년(2021년) 감사보고서가 '의견거절'을 받으면서 거래가 정지돼 상장폐지 기로에 놓였다. 쌍용차 인수 호재로 대주주들은 큰 수익을 남긴 반면 개인투자자들의 지분만 휴지 조각이 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2021년 말 기준 에디슨EV의 소액주주 수는 10만4,615명으로 지분율은 80.34%에 달한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에디슨EV 무자본 인수 후 쌍용차 인수 및 대규모 자금 조달을 가장한 주가 조작으로 소액투자자 약 12만,5000명에게 피해를 주고, 1,621억 원의 부당이득을 취득한 혐의'(자본시장법 위반 등)로 강 대표를 비롯한 경영진 4명을 기소했다.

"쌍용차 인수 미끼로 에디슨EV 주가조작 1,621억 원 챙겨"

주가조작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1월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이상거래 중 불공정거래로 금융위원회에 통보된 사건은 모두 105건으로 전년(109건)에 비해 소폭 줄었지만, 시세조종은 18건으로 지난해(13건)보다 5건 늘었다.

전문가들은 주가조작이 활개치는 이유로 처벌이 약한 점을 꼽았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주가조작 한탕으로 얻는 수익이 너무 커 당국에 걸려도 몇 년 살고 나오면 그만"이라며 "수십 년의 징역형을 선고하거나 어마어마한 벌금을 물리는 선진국과 비교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거래소가 지난해 이상거래를 분석한 결과, 사건당 평균 14명이 20개 계좌를 사용했고, 사건당 평균 부당이득금액은 약 46억 원으로 집계됐다. 김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이 불공정거래 규제를 공약한만큼 처벌 강화 등 근절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주가조작으로 피해를 입은 일반 투자자들의 배상에 힘써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부회장은 "일반 투자자들은 주가조작 피해를 입어도 입증이 어려워 이를 완화해야 한다"며 "피해자 한 명이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하면 다른 피해자들도 배상받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투자자들이 유혹에 넘어가선 안 된다. 거래소는 1월 발표 자료에서 "최근 금리상승과 시장 변동성 확대 등으로 투자손실이 증가하고 테마주가 유행하는 상황에서 투자손실을 빠르게 만회하려는 심리가 잘못된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본인의 계좌가 시세조종과 같은 위법행위에 사용될 것을 인식하면서 계좌를 빌려주는 행위는 처벌대상"이라고 주의를 당부했다.

박민식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