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봉투' 사건에 대한 민주당의 대응을 보면서 가장 황당했던 것은 자체 조사를 하지 않겠다고 방침을 정한 일이다. 애초에 민주당 대변인은 당 차원에서 직접 진상파악을 하겠다고 말했다. 전당대회에서 현금이 오고 갔다는 중대한 사건이 벌어진 이상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다음 날 바로 그 대변인이 자체 진상조사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말을 바꾸었다. 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실효성 있는 결과를 내놓을 수 없다는 게 이유다.
과연 수사권이 없으면 이 사건의 실체를 밝힐 수 없을까. 직업으로 수사를 해 본 사람으로 장담하지만 그렇지 않다. 현재 확보된 자료, 그리고 정당이 당원에게 가지는 권한을 활용하면 하루 만에도 진실에 가깝게 갈 수 있다. 구체적으로 방법을 가르쳐 주면 이렇다. 돈 봉투를 돌렸다는 혐의를 받는 윤관석 의원을 민주당 최고위원회 혹은 의원총회에 부른다. 그리고 언론에 보도된 윤 의원의 육성을 들려준다. "나는 인천(지역 의원) 둘하고 ○○이는 안 주려고 했는데 얘들이 보더니 '형님 기왕 하는 김에 우리도 주세요' 그래 가지고 거기서 세 개 뺏겼어." 그 말이 사실인지 물어보면 된다.
만약 사실이라고 하면, 대화에 등장하는 의원들을 불러서 확인하면 된다. 그리고 윤 의원을 상대로 그 세 명 외에 원래 주려고 했던 의원들이 누군지 물어서 계속 조사하면 된다. 그러다보면 어렵지 않게 진상에 다가갈 수 있다. 반대로 만약 윤 의원이 사실이 아니라고 답하면, 즉시 출당조치를 취해야 한다. 실제로 돈 봉투를 돌리지도 않았으면서 황당한 거짓말을 해서 당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슨 역할극을 한 것도 아닌데 근거도 없이 저런 말을 했다고는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는 민주당 지도부가 이토록 명확한 증거가 나왔는데도 진실을 밝히지 못한 데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게 선거에서 나올 수 있는 최악의 부정인 현금살포 사건에 대해 공당이 취해야 하는 최소한의 조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조사를 회피하는 이유는 대략 세 가지일 것이다. 첫째, 도덕적 권위의 결여. 당대표가 부패 사건 피의자인데 누가 누구를 단죄하겠는가. 둘째, 현역 의원 10여 명이 돈을 받은 사실이 밝혀질 때 당이 받을 치명상에 대한 두려움. 지금까지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사건이 있을 때마다 나타나는 민주당 특유의 '비를 같이 맞아주는' 문화다. 잘못을 따지기보다 감싸주는 행동을 미덕이라고 칭송한다. "(지역선대위원장 등에게 전달된) 50만 원은 한 달 밥값도 안 되는 돈"(장경태), "송영길은 물욕이 적은 사람"(김민석), "역시 큰 그릇 송영길"(박지원), "녹취록에 현역 의원의 이름이 담겼을 리가 없다"(우상호) 등 상식과 동떨어진 발언이 이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11년 전 이명박 정권에서 '민간인 사찰'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나는 직접 진상조사에 나서지 않는 당시 청와대를 질타하는 칼럼을 쓴 일이 있다. "대통령이 의혹의 당사자들을 불러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으면 바로 파악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진실을 감추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이나 다름없다"라는 내용이었다. 민주당이 그토록 싫어하고 비판하는 이명박 정부와 똑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다. 진실을 가리고 책임을 모면해보려는 진영은 결국 비슷한 운명을 맞게 되어 있다. 스스로 잘못을 확인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민주당 구성원들은 자신들에 대한 역사의 평가가 이명박 정권에 대한 평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