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할 짓이냐"… 목격자 행세 '음주 뺑소니'에 30대 가장이 죽었다

입력
2023.04.27 19:30
서울 주택가서 음주 차량에 치여 사망
장애 가졌지만 가족 부양, 업무도 꼼꼼
"신고 더 빨리 했더라면..." 안타까움만

27일 오후 서울 성동구의 한 장례식장. 30대 남성 A씨의 빈소 앞을 친구 10여 명이 지키고 있었다. 조문객을 받을 때마다 울음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는 23일 새벽 동대문구 용두동 근처 주택가 이면도로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치였다. 병원으로 옮겨져 중환자실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사흘간 생명의 끈을 놓지 않았으나, 26일 결국 세상을 떠났다.

A씨에게는 신체장애가 있었다. 하지만 동대문시장에 원단을 배달하는 일을 하며 초등학교 5학년 딸과 아내를 부양한 성실한 가장이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기에 갑작스러운 비보를 접한 지인들의 충격은 커 보였다. A씨와 30년 동네 친구라는 장모(39)씨는 “일주일 전 다른 친구 생일을 맞아 동네에서 만났던 게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며 “고인이 사망 선고를 받았다는 얘기를 듣고도 친구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다”고 허망해했다.

장애는 그의 삶에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특유의 활달함과 낙천적 성격으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장씨는 “팔이 불편했는데도 어렸을 적 오락실에 가면 게임을 제일 잘하고, 매주 축구 동호회 활동도 열심히 했다”고 회상했다. 배달 일에도 열심이었다. 장씨는 “모든 일을 자기 일처럼 해냈다”면서 “업무시간 외 거래처에서 연락이 와도 배달을 했던 베테랑”이라고 설명했다. 생전 A씨의 성실함을 보여주듯, 빈소 앞에는 ○○FC, △△직물 등 화환 수십 개가 빼곡히 늘어서 있었다.

든든한 가장이자 건강한 시민의 꿈을 앗아간 원흉은 음주 뺑소니였다. 가해 남성은 사고 직후 아무런 구호조치 없이 도주했다. 이후 다시 사고 현장에 돌아와 경찰에 “주취자가 길에 누워있다”며 허위 신고를 하는 파렴치함도 보였다. 그는 현재 도로교통법 위반ㆍ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사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조문객들은 A씨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가해자의 행태에 분노를 쏟아냈다. 장씨는 “신고가 조금만 더 빨랐더라도 친구는 세상을 등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사람이 죽어가는데도 뺑소니만 모면하려는 게 인간으로서 할 짓이냐”고 분개했다. 조문객 김모(62)씨도 “음주운전 처벌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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