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증권사발 '무더기 하한가' 사태가 나흘째 지속되고 있다. 8개 종목에서 증발한 시가총액만 8조 원을 웃돈다.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 금융당국이 압수수색에 나서며 수사에 속도가 붙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27일까지 나흘간 이번 사태로 증발한 시총은 8조2,083억 원에 달한다. 8개 종목 중 대성홀딩스, 서울가스, 선광은 이날까지 나흘 연속 하한가(-30%)를 쳤다. 가격제한폭이 ±30%로 확대된 2015년 6월 15일 이후 코스피 시장에서 연속 하한가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성홀딩스, 선광의 경우 하한가 매도잔량이 100만 주가 넘을 정도로 투매가 이뤄지는 상황이어서 하한가가 이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아 보인다.
삼천리 역시 하루 만에 27.2%가 빠지며 하한가에 근접했다. 다른 네 종목(다올투자증권, 다우데이타, 세방, 하림지주) 중 반등에 성공한 건 세방이 유일하다. 모두 24일 프랑스계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을 통해 매물이 쏟아지면서 하한가를 친 종목들이다.
이번 사태는 주가조작으로 무게가 기우는 모양새다. 이날 오전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총괄과는 서울 강남구의 한 투자업체 사무실 및 주요 혐의자들의 주거지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였다. 금융감독원·서울남부지검·한국거래소 인력을 포함, 총 34명이 투입된 전방위 수사였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금융감독당국이 모든 역량을 동원해 가장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사태를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주가조작 세력들끼리 장기간 주식을 매매해 일반 투자자들의 매수세를 유도한 뒤 주가를 부양하는 '통정거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8개 종목 모두 ①지난해 5월 또는 올해 초부터 장기간 주가가 꾸준히 상승했고, ②유통주식수가 적어 주가조작이 수월한 편이며, ③증권사로부터 돈을 빌려 투자하는 신용거래가 가능하다는 공통점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기준 다올투자증권을 제외한 7개 종목의 유통주식 비율(최대주주·특별관계인·자사주 제외)은 모두 50%에 못 미친다. 대부분 주가의 30~40%(위탁증거금률)만 지불하고도 매수할 수 있어 비교적 투자가 손쉽기도 했다.
'루보 사태'라는 유사 선례도 의심을 부른다. 다단계 업체 제이유(JU) 관계자들을 주축으로 한 주가조작 세력이 자동차 베어링 생산업체 루보의 주가를 2006년 10월~2007년 4월까지 40배가량 끌어올린 뒤 119억 원의 시세차익을 거둔 사건이다. 이들은 조직적으로 주식을 매집해 주가를 부양한 뒤 투자설명회를 열어, 투자자들로부터 수백만~수천만 원이 든 계좌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통째로 넘겨받기도 했다. 검찰 수사 직후 루보 주가는 11일 연속 하한가를 치며 원래 수준으로 폭락했다. 이번 하한가 사태에서도 가수 겸 배우 임창정씨가 주가조작 세력으로 의심되는 이들에게 돈과 신분증 등을 통째 넘겼다고 밝힌 점에서 당시 주가조작 사례와 유사해 보인다. 주가조작을 의심하고 금융당국의 조사가 시작되자 세력들이 한꺼번에 매도하면서 하한가를 기록한 점도 대동소이하다.
다우데이타와 서울가스의 최대주주가 연속 하한가 직전 지분 일부를 처분했다는 것도 의혹을 키우는 대목이다. 다우데이타 최대주주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은 20일 자신의 지분 3.7%(140만 주)를, 서울가스 최대주주 김영민 회장은 17일 지분 2%(10만 주)를 매도했다. 이에 김익래 회장 측은 "자녀의 증여세 납부를 위한 재원마련"이라고 해명했다.
외국계 증권사 창구를 통해 연일 매도 물량이 쏟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실제 주가조작이 발생했다면 차액결제거래(CFD) 계좌를 이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CFD는 실제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입 가격과 청산가격 간 차액에 CFD 계약 수량을 곱해 이익·손실 금액을 정한다. 최소 40%의 증거금만 넣고도 투자가 가능해 전문투자자 자격을 지닌 사람만 거래할 수 있다.
국내 증권사들도 2015년부터 CFD를 도입했지만 단순히 고객을 모집하는 역할을 하고, 실제 CFD를 거래하는 것은 외국계 증권사다. 몇 다리 건너 거래된다는 구조 때문에 연예인 등 유명 고액자산가가 선호하는 투자 방식으로 알려진다. 동시에 익명 투자와 다름이 없어 부정 거래에 활용될 위험성이 크다는 지적이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