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미국의 핵우산을 강화하는 새로운 개념의 대북 확장억제 조치에 합의했다. 양국 정상은 백악관에서 80분간 진행된 회담을 마친 뒤 '한미동맹 70주년 기념 한미 정상 공동성명', 그리고 이와는 별도로 핵협의그룹(Nuclear Consultative Group·NCG) 창설을 골자로 하는 대북 확장억제 조치인 ‘워싱턴 선언’을 발표했다. 두 정상은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의 외연을 확대하자는 의미에서 신흥기술, 사이버안보, 한국전 명예훈장 수여자 신원확인까지 총 5건의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회담을 마친 뒤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미 양국은 북한의 핵 공격 시 즉각적인 정상 간 협의를 갖기로 했으며, 이를 통해 미국의 핵무기를 포함하여 동맹의 모든 전력을 사용한 신속하고, 압도적이며, 결정적인 대응을 취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워싱턴 선언'에 대한 기자 질문에 "종전의 핵우산에 기초한 확장억제와 많이 다르다"며 "미국이 핵 자산에 관한 정보와 기획, 대응 실행을 누구와 함께 공유하고 논의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것은 새로운 확장억제 방안이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강력하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현지 브리핑에서 "우리 국민이 사실상 미국과 핵을 공유하면서 지내는 것으로 느껴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확장억제와 관련한 질문에 “미국이나 동맹, 우방국에 대한 북한의 핵공격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어떤 정권이 그런 행동을 하든 정권의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의 핵 공격 시 정권 종말'을 경고한 적은 있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한반도에 핵무기를 배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면서도 "핵잠수함을 포함한 (전략자산의) 전개를 확대할 것"이라고도 했다. 양국은 NCG에 차관보급을 두고 분기마다 1회씩, 1년에 4차례 회의를 열기로 합의했다.
한미 양국이 그동안 베일 속에 가려 있던 미국의 핵우산 계획을 공유하고 정기적으로 협의하기로 한 것은 진일보한 결정이다. 하지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식 핵 공유에는 미치지 못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 준수 의무를 재확인함으로써 전술핵 재배치나 독자 핵개발 가능성을 닫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정상회담에서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법 등과 맞물린 경제안보 현안도 비중 있게 논의됐다. 두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IRA와 반도체법이 기업활동에 있어 예측 가능성 있는 여건을 조성함으로써 상호 호혜적인 미국 내 기업 투자를 독려하도록 보장하기 위하여 긴밀한 협의를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고 명시했다. 다만 정상 간 담판을 통한 구체적인 성과는 도출하지 못했다.
이와 관련 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은 특히 한국 기업들의 투자와 사업활동에 특별한 지원과 배려를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고 소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법으로) 미국에서 상당한 경제 성장을 창출하고 있고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도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 그래서 나는 ‘윈-윈’(win-win)으로 본다”고 언급했다. “한국(기업)이 잘되는 게 우리에게도 압도적으로 이익이 된다”라고도 했다.
이 밖에도 양 정상은 우크라이나 지원, 대만 이슈 등 글로벌 현안들도 함께 논의했다. 윤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같이 무고한 인명피해를 야기하는 무력사용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공동입장을 확인하고, 국제사회와 함께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한 협력을 지속해 나가기로 했다”고 언급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소인수 회담이 꽤 길었지만 (우크라이나 이슈는) 아주 짧게 언급됐다"면서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