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시시때때로 중도가 중요하다고 듣는다. 그러나 중도가 실제로 존재하는 집단인지, 누구인지,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중도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에서는 크게 두 개의 견해가 있다. 첫째, 진보결집론이다. 둘째, 중도확장론이다. 중도에 대한 인식이 다르기에 정치적 실천 지침도 달라진다. 정치 노선이 갈라지는 핵심 변별점이다.
먼저 진보결집론이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중도는 허구”라는 인식을 갖는다. 중도 비율은 생각보다 미미하다고 본다. 그나마 존재하는 중도층 유권자들은 “양대 진영의 기싸움”에 영향을 받는 수동적인 존재로 파악한다. 이러나저러나 진보층 유권자의 결집이 선거 승리의 관건이라고 본다. 진보결집론자들은 상대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를 중시한다.
다음으로 중도확장론이다. 중도확장을 중시하는 개별 의원들은 제법 존재한다. 그러나 중도에 대한 이들의 인식은 꽤나 모호하다. 모호한 인식은 모호한 실천으로 귀결된다.
진보결집론은 소신에 차 있다. 중도확장론은 모호한 인식을 하고 있다. 소신과 모호함이 대결하면 소신이 승리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진보결집론이 민주당의 선거 캠페인을 주도하는 이유다.
중도는 존재하는가? 중도는 도대체 누구인가? 중도의 실체를 규명하는 것은 효과적인 선거캠페인, 바람직한 정치노선을 위해 가장 중요한 테마다.
결론부터 말해, 중도에는 3종류가 있다. ①소극적 지지층 ②스윙 보터(Swing voter) ③정치 저(低)관여층이다. 정치 저관여층의 경우 투표장에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2017년 대선과 2022년 대선의 투표율은 모두 77%였다. 23%의 국민들은 투표하지 않았다. 정치 저관여층 유권자들은 투표에 불참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여론조사 업체의 조사에 대해 도중에 전화를 끊거나 모름ㆍ무응답으로 답변한다.
중도층 유권자 중에서 두 집단이 중요하다. 하나는 소극적 지지층이다. 다른 하나는 스윙 보터다. 먼저 소극적 지지층을 살펴보자. 진보ㆍ보수 성향을 기준으로 유권자를 다섯 덩어리로 분류할 수 있다. ①적극 진보 ②소극 진보 ③중도 ④소극 보수 ⑤적극 보수다. 이들 비율을 각각 20%로 가정하자. 이들은 적극성의 정도가 다르다.
적극성 정도를 임의적인 수치로 표현하면, 양쪽 끝에 위치하는 ①적극 진보 ⑤적극 보수는 적극성 정도가 70%다. 이들은 인생에서 정치가 가장 중요하다. 정치 때문에 부부 싸움도 하고, 회사에서 동료들과 싸운다. 페이스북을 비롯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정치인들 담벼락에 댓글을 단다. 칭찬을 하거나 욕을 한다. 유튜브 채널도 꼭 챙겨 본다.
②소극 진보 ④소극 보수는 적극성의 정도가 50%다. 이들은 정치도 중요하지만 다른 것도 중요하다. 돈 버는 것도 중요하고, 놀러 가는 것도 중요하고, 연애하는 것도 중요하고, 개인 취미도 중요하다. 정치 때문에 회사 사람들과 싸우거나 친구와 싸우는 일은 흔치 않다.
③가운데 중도는 적극성의 정도가 30%다. 인생에서 정치는 덜 중요하다. 다른 게 더 중요하다. 돈 버는 게 더 중요하다. 정치에 관심 갖는 것은 시간 낭비다. 그놈이 그놈이고, 지들끼리 싸운다. 먹고살기 바쁘다.
진보와 보수의 유권자 비중, 적극성 정도를 그래프로 그리면 표와 같다. 유권자 비중과 적극성 수준을 동시에 고려하면 적극 진보는 소극 진보에 비해 더 큰 면적을 차지한다. 적극 보수도 소극 보수에 비해 더 큰 면적을 차지한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강경 지지층’에 어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②소극진보 유권자는 투표장에 갈 경우 진보계열 정당 후보를 찍을 가능성이 높다. 마찬가지로 ④소극보수 유권자도 투표장에 갈 경우 보수계열 정당 후보를 찍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특정 이슈의 영향을 받거나 후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 투표장에 가지 않는다. 평소 자신의 다른 가치관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유승민 찍어내기, 진박감별 논란, 김무성 옥새 파동도 ‘소극 보수’ 유권자를 투표장에 가지 않게 만든 요인들이었다.
그림1은 2012년 총선 투표율 대비 2016년 총선의 투표율 상승을 연령별로 보여준다. 2012년 국회의원 선거 투표율은 54.2%였다. 2016년 국회의원 선거 투표율은 58%였다. 3.8%포인트가 올랐다.
연령별 투표율 상승을 보면 흥미롭다. 특히 재밌는 부분은 50대다. 전체 평균은 3.8%포인트 증가했는데 유독 50대에서는 오히려 1.6%포인트가 떨어졌다. 2016년 기준 50대 연령은 국민의힘(당시 새누리당) 지지율이 높고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들은 2015년 여름부터 2016년 연초까지 겪었던 유승민 원내대표 찍어내기, 국정교과서 추진, 진박감별 논란, 김무성 옥새 파동 이슈 등을 접하며 투표장에 가지 않았다. 즉 ‘소극 보수’ 유권자들이 불참한 경우다.
반대로 20대 초반의 투표율은 9.9%포인트가 증가했다. 20대 후반은 11.9%포인트 증가했다. 30대 초반은 7.1%포인트가 증가했다. 이들의 투표율이 상승한 가장 중요한 원인은 세월호 참사로 추정된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터진 이후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 보수 언론 그리고 일베(보수 커뮤니티 일간베스트)는 세월호 유가족을 모욕하는 공격을 감행했다. 단식하는 세월호 유가족 옆에서 ‘폭식투쟁’을 한답시고 피자를 배달해서 먹었다. 보수 언론은 일베를 격려하는 보도를 일삼았다.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 역시 시시때때로 세월호 유가족들을 공격하고 모욕하는 발언을 일삼았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보수 세력의 패륜적인 공격은 20대 초반과 20대 후반의 투표율을 끌어올렸다. 이들은 애초 민주당의 ‘소극적 지지층’이었다. 세월호 이슈와 박근혜 정부의 권위주의적 행태가 이들을 투표장으로 불러들인 경우다.
2016년 총선은 민주당이 승리한 경우다. 민주당의 소극적 지지층은 투표장에 더 많이 참여했고, 국민의힘(당시 새누리당)의 소극적 지지층은 투표장에 덜 참여했기 때문이다. 소극적 지지층, 이들이 바로 중도의 실체다.
이제 중도 유권자의 또 다른 덩어리인 스윙 보터에 대해 살펴볼 차례다. 스윙 보터는 개념 정의 자체가 ‘이쪽을 찍었다가 저쪽을 찍는’ 유권자층을 의미한다. 유권자들은 정당에 대해 일체감을 갖는다. 정치학에서는 이를 ‘정당 일체감’이라 한다. 스윙 보터 유권자의 비중은 매우 적게 본다.
한국의 경우 꼭 그렇지도 않다. 특히 2030세대에서 그렇다. 2012년 대선은 문재인, 박근혜의 양자 구도였다. 2022년 대선은 이재명, 윤석열의 양자 구도였다. 딱 10년 만에 양자 구도가 재현됐다. 방송3사 출구조사는 성별ㆍ연령별 지지율을 공개한다. 딱 10년 만에 재현된 양자구도였기에, 연령의 변화까지 추적하는 ‘세대별’ 지지율의 연속성 및 변동폭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림2는 2012년 대선 대비 2022년 대선의 성별ㆍ연령별 득표율 격차다. 2012년 대선에서 20대는 2022년 대선에서 30대가 됐다. 이 경우 30대로 표현했다. 30대의 변심이 화려하다. 30대 남자의 경우 (20대 시절인) 2012년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를 62.2% 찍었다. 2022년 대선에서는 이재명 후보를 42.6% 찍었다. 19.6%포인트를 덜 찍었다. 반면 30대 남자는 2012년 박근혜 후보 대비 2022년 윤석열 후보에 15.5%포인트 증가했다. 30대 여성의 경우 문재인 후보와 이재명 후보의 격차는 -19.3%포인트다. 박근혜 후보와 윤석열 후보의 격차는 +13.2%포인트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찍었는데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를 찍은 30대 남녀가 무려 20%포인트 가까이 됐다. 이들의 경우 명백하게 ‘스윙 보터’에 해당한다.
중도(中道)라는 용어는 착시를 일으킨다.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중도는 없다. 중도는 실재한다. 소극적 지지층과 스윙 보터다. ‘중도와 연합 없이’ 선거 승리는 가능하지 않다.
최병천 '좋은 불평등' 저자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