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해볼래? 한 번 정도는 괜찮아.”
이 한마디는 A양을 마약의 늪에 빠뜨렸다. 그는 만 16세였던 2021년 고교를 중퇴한 뒤 아는 언니 권유로 처음 필로폰을 접했다. 호기심에 시작했지만 중독 증세가 나타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알게 된 공급자에게 몇 번 더 필로폰을 제공받아 투약하다 경찰에 적발됐다. A양은 “투약 후 몇 시간이 지나면 우울해지고 또 마약 충동이 생겼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미성년자였던 그는 소년보호재판에 넘겨져 재활 치료를 받았다.
SNS와 미성년자. A양 사례는 최근 급증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마약 실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익명성과 은밀성을 고루 갖춰 추적이 어려운 SNS를 통해 마약이 청소년들에게 무분별하게 퍼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가 26일 마약사범 131명을 검거했는데, 92명의 매수ㆍ투약자 중 미성년자가 15명이나 됐다. 경찰은 2년 넘게 수사해 이들을 모두 검찰에 넘겼다. 판매책(39명)에는 조직폭력배도 끼어 있었고, 19명은 구속 송치됐다. 경찰은 필로폰, 합성대마 등 시가 20억 원 상당의 마약류 1.5㎏과 현금 1,000여만 원도 압수했다.
미성년자에게 마약을 건넨 성인은 17명. 이들은 기존 대규모 마약 사건처럼 조직 단위로 움직이는 판매책이 아니었다. 랜덤채팅 애플리케이션(앱) 등 SNS를 무기로 청소년들에게 얼마든지 접근할 수 있어 ‘나 홀로’ 영업이 가능했다. 미성년자한테 마약을 팔면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처해지지만, 상대가 대금 지불 능력만 있으면 나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실제 검거된 10대들은 채팅 앱에서 “아이스 한 칸?(필로폰을 투약하자는 뜻)” 등의 은어를 주고받으며 공급책과 거리낌 없이 만난 것으로 드러났다.
마약시장 진입 장벽이 허물어지자 청소년도 반복 투약과 중독의 굴레에 갇힐 수밖에 없었다. 만 18세 때 검거된 B(20)씨는 한 차례 적발된 뒤 필로폰을 끊겠다고 약속하고도 다른 투약 현장에서 발견돼 결국 구속됐다. 그는 직접 마약을 팔기도 했으며, 정신착란 증세를 앓은 것으로 전해졌다. 미성년 마약사범들은 지인들과 어울리며 짧게는 한두 달에서 길게는 2년여간 마약을 투약했다.
청소년 마약사범이 십수 명 단위로 잡힌 건 이례적이다. 이제 한국도 10대들이 마음만 먹으면 마약을 어렵지 않게 구하고, 투약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뜻이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18년 143명이던 19세 이하 마약류 사범은 2022년 481명으로 5년 새 3배 이상 늘었다. 마약 수사에 정통한 한 경찰 수사관은 “SNS를 매개로 한 마약 공급 통로가 다변화하고, 또 접근이 쉬워지면서 청소년들을 유혹하고 있다”며 “10대를 겨냥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