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해외홍보비서관실이 지난 24일 기자들에게 제공한 윤석열 대통령의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 기사 한글 번역본에서 ‘일본 무릎’ 관련 발언 중 ‘저는’이라는 주어가 빠져 있었던 것에 대해 박수현 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의도적 삭제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박 전 수석은 26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 “해외홍보비서관실이 그 부분(‘저는’이라는 주어)이 문제가 될 것을 인식했기 때문에 뺐다고 본다. 의도적 삭제”라며 “그런 것들을 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언론을 대하는 태도, 국민을 대하는 태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워싱턴포스트는 24일 방미를 앞둔 윤 대통령과 서울에서 진행한 인터뷰 기사를 공개했다. 이날 대통령실 해외홍보비서관실 역시 출입기자들에게 “오늘 워싱턴포스트 인터뷰 기사에서 인용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은 아래와 같습니다. 보도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라는 공지를 보냈다. 인터뷰 기사에서 쌍따옴표로 직접 인용된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한글 번역본을 제공한 것이다. 해외홍보비서관실은 대통령이 외신 인터뷰를 할 때마다 항상 한글 번역본을 기자들에게 제공한다.
이 공지에서 ‘한일관계’ 부분 대통령 발언은 “지금 유럽에서는 참혹한 전쟁을 겪고도 미래를 위해 전쟁 당사국들이 협력하고 있습니다. 100년 전의 일을 가지고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라고 돼 있었다.
‘받아들일 수 없다’의 주체가 누구인지 생략된 것이다. 이 대통령실 한글 번역본을 근거로 국민의힘 유상범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밤 '받아들일 수 없다'의 주체는 '일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이 기사를 쓴 미셸 예희 리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다음 날(25일) 오전 윤 대통령이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 인터뷰 녹취록을 공개, 실제로는 ‘저는’이라는 발언을 한 것이 확인됐다.
이에 대해 박 전 수석은 “참모 기능이라는 게 대통령이 어떤 실수를 하거나 하면 그 실수를 덮기 위한 은폐와 왜곡과 축소와 이런 것들로 계속 이어지니까 신뢰를 할 수가 없는 것”이라며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말했다.
“100년 전 역사 때문에 일본이 무릎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발언 자체도 박 전 수석은 “있을 수 없는 발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역사를 결단할 권한까지 대통령에게 위임하지 않았고, 위임의 대상도 아니다”라며 “자꾸 대통령께서 정치적 결단, 정치 영역으로 역사의 문제까지 끌어들이는 것은 대통령님의 역사 인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여러 차례 검증을 거쳐 철저히 준비하는 외신 인터뷰에서 이런 발언이 나온 데 대해서는 윤 대통령의 즉흥적인 발언이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박 전 수석에 따르면, 정상회담 전 대통령의 주요 언론 인터뷰가 정해지면 해당 언론사로부터 인터뷰 질문 내용을 받고, 그 내용을 대통령실 각 담당 부서가 정부 각 부처와 조율해서 답변 초안을 만든다. 이것을 취합해 대통령 비서실 주요 참모들이 모여 초안을 완성해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대통령이 첨삭을 하면 참모들이 다시 한번 검토해 최종안을 확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시스템이라고 박 전 수석은 설명했다. 그는 “(즉흥적인 발언) 가능성이 가장 많다”며 “초안을 읽어본 대통령이 직접 이렇게 고쳐라고 지시했을 가능성도 있고, 애드리브의 가능성도 있고 두 가지 다 열어놓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 전 수석은 또 “우리나라 외교부가 가지고 있는 외교의 프로토콜(외교용 의례, 언어)이라는 게 있고, 정부 관료들은 일관된 입장을 가졌을 텐데 윤 정부에 들어와서 180도 다른 입장이 나오는 것은 대통령이나 적어도 대통령실의 강한 의지가 개입된 표현이라고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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