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장애인 노동과 생의 의지

입력
2023.04.2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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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일자리가 없다' 기획 시리즈 4회

한국인의 자살률은 2020년 10만 명당 25.7명으로 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다. 학회에서 만나는 외국인 연구자들은 이 수치에 경악하며 고소득 국가인 한국에서 사람들이 왜 이토록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지 묻는다. 그런데 국립재활원 연구에 따르면, 2020년 한국 장애인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57.2명이다. 한국인 전체보다 2배 이상 높다.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 살아 있기를 포기하는가. 수많은 연구에서 언급되는 요인은 '희망의 부재'다. 오늘 하루를 견딜 수 없어서가 아니다. 숨 막히게 자신을 옥죄는 좌절의 순간이 내일도 모레도 계속될 것이라는 체념이 생의 에너지를 빼앗는다.

우리는 두 달에 한 번꼴로 발달장애아동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고 자신의 삶도 함께 포기한 신문기사를 접하고 있다. 사회적 고립 속에서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생을 포기한 지체장애인의 죽음은 '상투적 사건'이 돼 더 이상 뉴스로 보도되지 않는다. 정부는 그 현실을 두고 자살예방교육을 확대하겠다고 한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막막한 현실이 변하지 않는데 인식과 태도를 바꾸는 교육만으로 장애인은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까.

필요한 변화의 핵심은 노동이다. 모든 인간에게 그렇지만 특히 장애인에게 노동은 재정적 안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장애인에게 노동은 공동체에서 자신의 자리를 확인하고 다른 사회적 활동으로 나아가기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한다.

지체장애인이 아침이면 출근해 일하고 밤이면 퇴근해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일상이 되는 사회에서 그들이 투표소와 극장과 병원에 가지 못할 리 없다. 발달장애 아동을 키우는 부모의 가장 큰 공포는 성인이 된 자녀가 살아갈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사망하고 난 이후 돌봐줄 사람이 없어 상상조차 하기 싫은 비참한 삶을 자녀가 살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성인 발달장애인이 구성원으로 인정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일터가 존재하는 사회라면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자존감과 성취감은 물론이고 부모의 막막함은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2022년 상반기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에 따르면, 15세 이상 성인 중 전체 인구의 고용률은 63%인데 등록 장애인은 36.4%로 차이가 26.6%에 달한다. 게다가 장애인 고용의 상당수는 정부가 정한 의무고용률(공공부문 3.6%, 민간부문 3.1%)을 채우기 위한 6개월 이하 단기 일자리다.

장애인 노동의 가장 큰 장벽은 사회 곳곳에 뿌리 깊게 새겨진 비장애중심주의다. 한국의 장애인은 전 생애에 걸쳐 교육, 이동, 의료 이용의 모든 과정에서 차별을 경험한다. 그러한 차별의 역사는 장애인이 생산적 노동을 하기 위해 필요한 준비의 시간을 박탈하고 노동의 기회를 차단한다.

비장애중심주의에 균열을 내기 위해 다양한 층위에서 변화가 필요하다.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았을 때 기업이 내는 고용부담금은 1990년 법이 제정될 당시 정한 '최저임금의 60~100%'에서 23년째 변하지 않고 있다. 이 금액은 장애인 노동의 가치를 한국 사회가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반영한다. 많은 기업이 장애인을 고용하는 대신 부담금을 내는 '합리적' 선택을 하고 있다.

또한 장애인을 위한 작업환경 모델의 개발과 확산이 절실하다. 비장애인의 몸에 맞춰 설계된 일터에서 장애인은 필연적으로 무능한 존재가 된다. '다른 몸'을 고려한 작업환경의 변화가 없다면 장애인 노동자는 일터에서 무력한 존재가 되고, 기업주는 그들을 규제 때문에 떠맡은 짐처럼 여기게 된다.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장애인 일터에 대한 수많은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그 성과를 현실에서 적용가능한 형태로 만들어 제공해야 한다.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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