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상 존속살해는 자신 또는 법률상 배우자의 직계가족을 살해하는 일이다. 대다수 선진국에선 존속살해를 따로 다루는 법 조항이 없거나 오래전에 폐지했지만, 우리나라에선 유지되고 있다. 처벌 수위도 강하다. 사형이나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 징역형에 처해지며 미수범도 처벌한다. 유교적 도리에 어긋나는 행위를 금기시하는 국민 정서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20대 초반 아들이 2008년 6월 거액의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어머니를 살해한 사건, 10대 손녀가 2019년 6월 외할머니를 흉기로 수십 차례 난자한 사건은 대표적인 존속살해로 사건 발생 당시 국민적 공분을 샀다.
지난해 대전에서도 존속살해 사건이 발생했다. 40대 아내가 중학생 아들을 끌어들여 남편을 참혹하게 살해하고 '가정폭력 피해자' 행세를 한 사건이다.
"남편을 살해하기로 결심하고 장기간 준비한 뒤 망설임 없이 범행을 저지르는 등 범행 수법이 잔인하고 극악무도하다. 범행 동기도 고인의 탓으로 돌리는 등 진심으로 범행을 뉘우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지난달 14일 대전지법 형사12부(부장 나상훈)는 존속살해와 사체손괴, 사체유기, 특수상해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A(43)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며 피고인을 질타했다.
A씨와 함께 범행을 저지른 아들 B(16)군에게는 부정기형(미성년자에게 형기의 상·하한을 둔 장기와 단기로 나눠 선고하는 형) 중에서 가장 무거운 장기 15년·단기 7년을 선고하며 "범행 내용이 중하고 가담 정도가 가볍지 않지만, 나이가 어린 소년으로 교화와 개선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모자는 왜 남편이자 아버지인 피해자를 잔인하게 살해한 걸까. 법원 판결문을 보면 천륜을 저버리고, 가족을 누구보다 사랑한 50대 가장을 살해한 모자의 범행 과정이 낱낱이 드러난다.
언어장애가 있는 A씨는 2005년 피해자인 남편 C씨와 결혼했다. 하지만 결혼 초부터 경제적 형편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C씨가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고 비하한다고 생각해 자주 다퉜다.
B군은 이런 환경 속에서 아버지인 C씨가 살찐 자신을 비하하고, 학교 성적이 신통치 않다고 비난한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감은 커졌다.
이처럼 C씨를 향해 쌓인 모자의 삐뚤어진 분노는 돌이킬 수 없는 범죄로 이어졌다. A씨는 지난해 9월 18일 밤 대전 중구 자신의 집에서 C씨와 말다툼을 했다. C씨가 충남 아산에서 하던 사업에 실패한 뒤 자신과 상의 없이 집으로 돌아오자, 평소 쌓인 불만을 토로하다 다툼이 벌어진 것. 이 과정에서 A씨가 집 안에 있던 소주병을 던져 C씨의 머리 왼쪽 부위가 찢어지기도 했다.
이틀 뒤 A씨는 "너랑 살아주는 것을 고마워하라"는 C씨의 말에 화가 나서, 주사기에 소주를 넣은 뒤 그 바늘로 잠든 C씨의 눈을 찔렀다. 깜짝 놀란 C씨는 일어나서 움직이다가 넘어졌고, 탁자에 부딪혀 왼쪽 눈까지 다쳤다. 다행히 눈꺼풀과 눈 주위 타박상에 그친 C씨는 홧김에 A씨에게 "경찰에 신고하겠다. 짐 싸서 나가라"고 말했다.
A씨는 C씨가 진짜 신고할 것이라는 두려움과 그동안 쌓인 분노까지 더해져 더 이상 결혼생활을 이어갈 수 없다고 보고 C씨를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농약이나 신경안정제 등을 몰래 먹인 뒤 C씨를 계단에서 밀어 넘어뜨리겠다는 구체적인 살해 방법까지 계획했다.
A씨는 지난해 9월 26일부터 10월 6일까지 인터넷을 통해 일회용주사기(10cc) 10개를 구입하고, 대전 중구와 서구 병원을 찾아가 남편과 자신이 불면증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거짓말해 수면제와 신경안정제 60여 정을 처방받았다.
A씨는 자신이 평소 친정에서 갖고 와 보관하던 제초제를 한 숟가락 국에 넣어 C씨를 살해하려 했지만 양이 적어 미수에 그쳤다. C씨가 먹는 음식에 신경안정제와 수면제 등을 넣었지만 C씨를 죽이는 게 여의치 않자 결국 아들인 B군을 범행에 끌어들였다.
A씨는 평소 아들이 C씨를 미워한다는 점을 이용해 "아빠를 함께 죽이자. 네가 아빠의 다리를 묶으면 그 후로 엄마가 알아서 한다"고 제안해 범행에 끌어들였다.
B군은 이 과정에서 단순 공범을 넘어 능동적으로 범행 수법을 제안하기도 했다. B군이 "OO액을 사용해 아버지를 죽이자"고 제안하자, A씨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3리터 OO액 한 통을 구매했다. 잠든 C씨의 가슴에 OO액을 주입하거나 그로 인해 몸을 가눌 수 없게 되면 계단 등에서 밀어 살해하자는 구체적인 범행 방법도 세웠다.
지난해 10월 28일 오후 7시. A씨는 잠든 C씨의 왼쪽 가슴에 주사기를 이용해 OO액을 주입했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깬 C씨가 A씨를 밀어내고 제압하려고 했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B군은 집 안에 있던 흉기로 C씨의 목과 머리, 옆구리를 마구 찔렀다. C씨의 손아귀에서 풀려난 A씨도 집 안에 있던 둔기로 C씨의 머리를 사정없이 폭행했다. 결국 C씨는 머리와 목, 옆구리를 심하게 다쳐 숨졌다. B군은 혈흔을 감추기 위해 C씨의 사체를 욕실로 옮겨 씻던 중 그동안 쌓인 악감정을 참지 못하고 시신을 훼손하기도 했다.
경찰에 붙잡힌 B군은 "평소 아버지의 가정폭력이 심했고, 사건 당일에도 엄마를 때리는 걸 말리다 우발적으로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A씨는 사건 직후 참고인 진술을 통해 아들의 단독 범행이라고 거짓말하며 자신의 책임은 회피했다.
하지만 A씨의 거짓말은 금세 드러났다. 검찰의 휴대폰 포렌식 결과 술병에 맞아 상처를 입은 것은 C씨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아들과 범행을 공모한 문자메시지까지 드러나자 A씨는 결국 범행을 인정했다.
B군도 뒤늦게 "아빠가 나쁜 사람인 것처럼 부풀렸다"고 실토한 뒤, A씨와 함께 범행을 저지른 사실을 시인했다. A씨는 그러나 범행을 인정하면서도 "남편이 평소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가정폭력을 일삼았다. 언어장애를 갖고 있는 나를 무시하고, 처가에도 소홀히 해 화가 나 범행을 저질렀다"고 가정폭력 피해자임을 거듭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 결과, C씨가 술을 먹고 가끔 거친 언사를 했지만, 평소엔 오히려 가족을 사랑하는 헌신적 가장이란 점을 엿볼 수 있는 증거들이 많았다. C씨는 생전에 A씨와 아들에게 '아들을 보고 싶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숨지기 사흘 전 작성한 노트에선 "눈을 다친 뒤 아직도 시력이 회복되지 않아 고통스럽다"면서도 "아내와 자식을 보면 다시 힘을 얻는다"는 문구가 발견됐다. 아내 때문에 눈을 다친 뒤 안과 진료를 받을 때도 '나뭇가지에 찔린 상처'라며 의사에게 아내의 폭행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과 피해자가 평소 다툼이 잦았던 것은 사실로 보이지만, 피해자가 가정폭력을 일삼았다는 주장에 부합하는 객관적 자료는 전혀 확인할 수 없다"며 "설령 피해자가 술을 마시고 과격한 언사를 했다고 해도 배우자를 살해한 행위는 절대 합리화될 수 없다"고 했다.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모두 인정한 A씨는 기소 후 100차례 넘게 재판부에 반성문을 제출하며 선처를 호소했다. C씨의 어머니는 아들을 살해한 것도 모자라, 손자를 살인자로 만들어 놓고 형량을 줄이려고 반성문을 쓰는 며느리의 모습에 억장이 무너졌다.
C씨의 어머니는 지난 3월 20일 결심공판에서 "몇 번을 다시 생각해도 내 아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 모르겠다"며 "자식을 살인자로 만들어 놓고 형량에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지, 며느리가 자꾸 반성문을 내는 것을 보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고 오열했다.
모자는 1심 선고에 불복해 지난달 19일 항소장을 제출했다. 검찰은 B군에 대해선 검찰시민위원들이 "교화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을 만장일치로 내자 항소를 포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