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도 개편에 관한 국회 전원위원회가 백가쟁명으로 막을 내렸다. 국회의 주요 현안에 대해 여야 의원들이 각자의 의견을 내걸고 충분히 토론하는 제도인 전원위원회가 20년 만에 열렸는데 그에 대한 평가가 그리 후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번 전원위원회를 통해 얻어낸 성과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여야 의원 100명이 당의 간판이 아닌 헌법기관인 자신의 이름을 걸고 현안에 대해 진지하게 의견을 밝혔다는 점만으로도 긍정 평가를 받아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본회의장의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자리 잡은 상대 정당 의원에 대한 야유도 없었고, 국민에 대한 약속을 저버리고 위성정당을 방조했다는 자기반성도 나왔다.
무엇보다 여야 극한 대립을 부르는 현행 승자독식 선거제도를 고쳐 비례성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점에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했다. 지지층만 바라보는 정치, 진영 논리에 충실한 전사들만 살아남는 정치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민주화가 이뤄진 13대 총선 이후 사표 비율은 49.98%로 유권자 둘 중 한 명의 뜻은 의회 구성에서 배제되었다.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을 싹쓸이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비례대표 선출 방식을 현행 전국 단위에서 권역별로 바꾸자는 제안이다. 영남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호남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정치적 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위해 어떤 식으로든 청년, 여성, 장애인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지방소멸에 대응하기 위한 특단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분출되었다. 지역별 특성에 따라 인구와 면적에 대한 특례를 적용하여 가중치를 두자는 것이다. 현행 제도하에서 전북 남원·임실·순창처럼 3개 시군으로 구성된 선거구가 9곳이고, 강원 동해·태백·삼척·정선처럼 4개 시군으로 구성된 선거구가 13곳이다.
특히 비례대표 개방형 명부제 도입 여부에 대해 전원위원회에서 발언한 의원 17명 중 14명(민주 7명, 국민의힘 7명)이 찬성 의견을 밝힌 점은 눈여겨볼 지점이다. 정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추천하되 최종 결정은 유권자의 손으로 직접 뽑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간 정당이 낙점하는 형식의 비례대표 순위 결정 방식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 전원위원회가 토론의 시간이었다면 이제부터는 협상의 시간이다. 얼핏 전원위원회에서 표출된 의견들은 접점이 없어 보이지만 큰 틀에서 공감대를 이룬 내용들을 좁혀보면 합의점을 도출하기가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비례대표 선출 방식과 관련해서는 권역별로 뽑되 개방형 명부제를 도입할 수 있다는 부분은 접점을 찾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선거제도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국민적 공감대와 수용성이다. 승자독식 패자전몰의 현행 선거제도를 개혁하여 선진국에 접어든 우리나라 수준에 맞는 게임의 룰을 만들어내느냐 마느냐는 오롯이 정치권의 몫이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은 전원위원회에서 분출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낼 협상 기구인 전원위원회 소위원회 구성을 매듭짓는 일이다.
한편 정치개혁특위에서는 선거제도 개혁에 관한 국민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전문가들과 함께 공론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5월 중순까지 결과를 도출할 예정이다.
여야 지도부는 전원위원회 소위원회부터 구성하여 신속하고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공론조사 등 국민 여론을 수렴하여 비례성 대표성 다양성을 강화하고 지역소멸에 대응할 수 있는 최적의 선거구제 조합을 늦어도 6월 안에는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 국민의 요구에 소극적으로 응답하는 정치세력에게는 미래가 없다. 정치부 국회 출입기자 대상 여론조사가 이를 뒷받침한다. 여론조사에 응한 거의 모두(96.2%)가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