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직한 A씨는 입사 후 받은 근로계약서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수습기간이 없다더니 수습기간 동안 월급을 70%만 지급하겠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가 초장부터 4대보험 가입과 근로계약 체결을 뭉개는 모습을 보여 한 차례 실망한 탓에 A씨의 퇴사 고민은 더 깊어졌다.
23일 직장갑질119와 사무금융우분투재단에 따르면 직장인 5명 중 1명 이상이 채용 공고와 실제 근로조건이 다른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두 단체가 지난달 3~10일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22.4%는 '입사 시 채용 공고나 제안받은 조건이 실제 근로조건과 동일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특히 노동시장의 약자인 비정규직(25.3%), 5인 미만 사업장(29.8%) 등에서 이 같은 경험 비율이 높았다. 3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되는 채용절차법은 사용자가 채용광고에서 제시한 근로조건을 구직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지 못하도록 규제한다.
A씨처럼 근로계약서 작성·교부 과정에서 문제점을 파악하면 그나마 다행일 정도로 근로계약서를 받지 못한 이들도 27.3%나 됐다. 심지어 근로계약서를 작성조차 하지 않았다는 응답률도 14.3%였다. 직장인 10명 중 약 3명은 근로기준법에 의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셈이다. 비정규직(38.8%), 월 급여 150만 원 미만(41.3%) 노동자는 이 비율이 더 높았고,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무려 50.3%였다.
회사와 1년 계약을 맺었다는 B씨는 "4대보험은커녕 계약서와 월급명세서도 안 주고, 채용 공고 내용과도 다른 게 많아 퇴사하겠다고 말했다"면서 "그러자 사측은 '계약기간 미충족 시 1개월치 손해배상이 가능하다'는 조항이 있다며 근로계약서를 등기로 송부했는데, 한 적도 없는 내 서명이 들어가 있었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직장인들은 이 외에 면접 과정에서의 모욕, 사용자의 채용 비리 등으로 인한 고통도 호소한다. C씨는 "면접에서 '82년생 김지영 읽어서 결혼을 안 하려는 거냐' '여자 팔자 뒤웅박이다' 등의 말을 들었다"면서 "괜찮은 직장이라 개인정보 보호가 철저할 줄 알았는데 면접 보러 간 사람에게 할 말이냐"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직장갑질119는 30인 미만 사업장에도 채용절차법을 전면 적용하고 사용자의 '채용 갑질'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20일 건설 현장과 청년 다수 고용 사업장에 대한 기획감독과 처벌 수위를 높인 공정채용법 입법 계획을 밝히며 불공정 채용 근절을 강조한 바 있다. 다만 예시로 든 것은 채용 강요, 고용세습 등 주로 노조에 의한 불공정 행위였다.
김기홍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불공정 채용의 원인은 고용세습이 아니라 계약 과정에서부터 분명히 드러나는 갑을관계에 있다. 갑인 사용자는 채용이라는 칼자루를 들고 을인 노동자에게 채용갑질을 일삼는다"면서 "정부는 법의 사각지대 최소화와 위법행위 처벌 강화 등 채용 갑질 근절을 위한 적극적 행정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