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범죄도시'가 현실로... 흉기 들고 가리봉 노래방 들쑤신 中동포 조폭

입력
2023.04.20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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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중국동포 출신 조폭 7명 전원 검거
보도방 만든 후 "우리 도우미만 써" 협박 
거부한 노래방 업주 때리고, 흉기로 위협

2017년 개봉한 영화 ‘범죄도시’는 상인들을 괴롭히는 중국동포 출신 조직폭력배들을 경찰이 일망타진하는 모습을 그렸다. 2000년대 중반 외국인들이 많이 사는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일대를 주름잡던 조폭의 갖은 악행이 모티브가 됐다.

영화의 실사판 사건이 2022년 또 터졌다. 가해자 출신도, 피해 지역도 같다. 가리봉동을 무대로 폭행ㆍ협박을 일삼은 중국동포 조폭 일당이 20일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속칭 ‘보도방’으로 불리는 성매매 알선ㆍ공급업체를 만든 후 자사 여성도우미를 쓰라며 노래방 업주들에게 수시로 흉기를 들이댔다. 피해 업소만 40곳에 달했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가리봉보도협회’라는 범죄단체를 조직한 피의자 7명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단체 구성) 및 형법상 ‘범죄단체조직’ 등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중국 출신 40대 총책 A씨 등 주요 가담자 4명은 구속 송치됐다.

가리봉 노래방 장악한 中 동포 출신 조폭

조폭들의 범죄 행각은 영화를 거의 빼닮았다. 중국 연변 출신으로 2012년 한국으로 귀화한 A씨는 가리봉동 상권을 장악할 결심을 하고, 중국에 있는 조직원을 불러들였다. 재외동포비자(F4)로 조직원들이 속속 입국하자 A씨는 2021년 11월 여성도우미를 공급하는 가리봉보도협회를 결성했다. 곧 유흥주점과 노래방 업주들에게 “다른 업체 도우미를 쓰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이 가해졌다.

요구를 거부한 업주에게는 가혹한 보복이 뒤따랐다. 가게 입구를 차량으로 막아 영업을 방해하는 건 예삿일. 현행법상 주류 판매나 도우미 영업이 허용되지 않는 일반 노래방에도 도우미를 받으라는 으름장을 놓고, 말을 듣지 않으면 불법 영업을 한다고 허위 신고를 했다. 아예 업장에서 점주를 폭행하거나 기물을 파손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심지어 회칼 등 흉기로 협박하는 영상을 찍어 보내기도 했다. 피해업소 40곳은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중국인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순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도우미를 감금ㆍ폭행한 사례도 있었다”고 말했다.

필로폰 투약 후 폭행... "공포심 유발"

도를 넘는 협박에 피해자들은 경찰에 신고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러자 조폭들의 범행은 더 대담해졌다. 일당은 올해 1월 연합체 틀 안에서 조직원 각자가 운영하던 성매매ㆍ알선 공급업체 6곳을 하나로 통합했다. 고용한 도우미는 약 30명. 모두 20~50대 중국 국적 여성이었다. 경찰은 이때를 기점으로 일당이 사실상 가리봉동 상권을 장악했다고 보고 있다. “노래방 업주를 폭행하는 조직이 있다”는 첩보가 들어온 2월 이후에도 조폭들은 계속 사업을 영위했다.

여기에 일부 조직원은 필로폰을 투약하고 ‘환각’ 상태에서 업주들을 폭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마약을 수익원으로 삼지 않았지만, 업주들에게 공포심을 유발하려는 목적이 엿보인다”고 설명했다.

중국인 도우미들에게 성매매를 알선한 정황도 포착됐지만, 유학생 신분인 이들 상당수가 출국하면서 수사는 진척되지 못했다. 경찰은 최근 외국인 밀집지역에서 불법 행위가 늘고 있다고 판단해 첩보 수집을 강화하는 등 엄정 대응하기로 했다.


박준석 기자
나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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