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공포 처음"... 中동포 조폭 검거가 마냥 반갑지 않은 가리봉 상인들

입력
2023.04.21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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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범 구속됐지만 상인들 불안에 떨어
"허위신고 영업 방해, 흉기 들고 협박"
중국 국적 '도우미' 여성도 폭력 노출

‘형사님들의 노고(공갈, 협박, 폭력단속)에 가리봉이 보다 더 안전하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20일 오후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상가 거리엔 이런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여성도우미 채용을 강요하며 노래방 업주 수십 명을 협박ㆍ폭행한 중국동포 출신 조직폭력배 일당을 일망타진한 경찰에 감사를 표한 것이다. 그러나 상인들의 미소 뒤로 일말의 불안감이 엿보였다.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탓이다. 장사를 준비 중인 업주들은 인터뷰 요청에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60대 업주는 조폭들의 횡포에 혀를 내둘렀다. 그는 철문을 굳게 잠그고 “보통 악질이 아니었다. 나중에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다들 입조심하는 것”이라고 입을 뗐다. 한국으로 귀화한 총책 A씨가 곧 풀려난다는 괴소문이 업주들 사이에서 떠돌 만큼 상인들의 공포심은 커 보였다.

업주들의 짧은 전언을 종합하면, A씨가 가리봉동 일대에서 노래방 성매매 알선 및 공급 시장을 독점할 목적으로 활동을 본격 개시한 건 지난해 연말부터다. 가리봉시장 우마길에는 30곳 넘는 노래방이 밀집해 있어 먹잇감으로 안성맞춤이었다. A씨 일당은 통상 시간당 4만 원이던 ‘접대 봉사료’를 5만 원으로 올렸다. 수익은 도우미 여성과 업체가 나눠갖는 구조였는데, 겉으로는 그중 1만 원을 알선 수수료 명목으로 챙겼다.

계약을 거부한 업주는 끊임없이 괴롭혔다. 피해 업주 B씨는 “노래방 앞에 대형 스포츠유틸리티 차량(SUV)을 세워놓고 감시하면서 평범한 손님이 들어와도 ‘도우미를 불렀다’고 경찰에 허위 신고를 했다”고 분개했다. 일당은 손님 입장을 막으려 페트병까지 차에 구비해 놓고 현장에서 용변을 해결했다. 이런 허위신고로 한 달 새 경찰이 무려 27번 출동한 노래방도 있었다.

거친 욕설은 일상이었고, 일식당에서 쓰는 회칼까지 협박에 동원됐다. 취재진이 입수한 영상엔 A씨가 흉기 한 자루를 오른손에 들고 중국동포 억양으로 “X같은 것들아. 잔XXX 쓰지 말라”고 욕설을 내뱉는 장면이 담겼다.

중국 국적 도우미 여성들도 폭력에 노출되긴 마찬가지였다. B씨는 “조폭 일당은 함께 일하지 않은 여성들을 쫓아다니면서 계속 동업을 강요했고, 거절하면 노래방 안까지 따라 들어가 폭행하다 고소도 당했다”면서 “국적이 중국이라 신고가 어렵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상인들은 모처럼 찾아온 평화가 오래 유지되길 바라고 있다. 또 다른 업주는 “여기서 23년 장사했는데, 이렇게 매일 노심초사한 적은 처음”이라며 “범죄자들이 두 번 다시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나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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