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집행' 급한 정부… 공무원 야근수당까지 미리 줬다

입력
2023.04.2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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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 3월 초과근무수당 선지급 요청
경기 회복 위한 재정 조기 집행 차원
보너스 아닌 가불 수당, 조삼모사 지적

지난달 말 중앙부처 공무원 A씨의 월급 통장엔 약 30만 원이 더 꽂혔다. 알고보니 4월 말 받을 예정이던 3월 몫 초과근무수당이었다. '경기 회복 차원에서 수당을 먼저 지급해달라'는 기획재정부 요청을 따랐다는 사내 공지가 붙었다. 월별 야근 시간이 비슷한 A씨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달 수입은 초과근무수당을 지난달에 당겨 받은 만큼 줄어, 미리 들어온 돈을 함부로 쓸 수 없어서다.

20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기재부는 2월 말 각 부처에 '각종 수당 및 공공요금 등 재정 집행 관련 협조 요청'이란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 여기엔 중앙부처가 소속 공무원에게 초과근무수당을 선지급하도록 독려하는 내용이 담겼다.

초과근무수당은 5~9급 공무원 또는 공무직이 야근하거나 휴일에 일했을 때 받는 수당이다. 20~25일인 월급날 이후에도 초과근무일이 발생할 수 있어 통상 한 달 늦게 지급된다. 초과근무는 하루 4시간, 월 57시간 한도가 있다. 시간당 초과근무수당은 9,620원~1만4,692원 사이로 상위직일수록 높다. 초과근무 시간을 꽉 채웠다면 한 달 수당이 최대 83만7,444원인 셈이다.

기재부는 '경기 변동성 완화 및 거시경제의 안정성 제고를 위해 가용재원을 총동원해 신속 집행을 추진하고 있다'며 초과근무수당 선지급 요청 사유를 각 부처에 제시했다. 정부가 경기 회복을 위해 강조하고 있는 재정 조기 집행의 일환으로 초과근무수당을 미리 지급하고 이를 받은 공무원들이 지갑을 열면 소비 확대가 이뤄질 것이라는 취지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 재정 조기 집행률 목표를 역대 가장 빠른 속도인 65%로 두고 있다.

이에 따라 기재부, 해양수산부, 문화체육관광부, 고용노동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상당수 부처는 3월 초과근무수당을 같은 달에 곧바로 입금했다. 3월 1~25일까지 발생한 초과근무수당을 한 달 먼저 지급한 식이다.

현장에선 초과근무수당 선지급을 두고 '조삼모사 정책'이란 뒷말이 무성하다. 먼저 받은 초과근무수당은 '보너스'가 아닌 '가불 수당'이라 A씨 사례처럼 마냥 소비에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재정 집행률을 높이겠다는 정부 목표도 달성하지 못했다.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교육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3월 초과근무수당을 관례대로 이 달에 준다는 부처도 있어서다. 이들 부처는 한 달 단위로 계산하던 초과근무를 중간 집계하면, 혼란이 발생할 수 있어 수당을 선지급하지 않았다.

한 중앙부처 공무원은 "인건비까지 빨리 집행한다는 건 그만큼 경기가 안 좋다는 의미"라면서도 "다만 3월 야근이 유독 많아 평소보다 수당을 많이 받은 공무원을 제외하곤 선지급 효과를 체감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세종= 박경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