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인구 불안’이 확산한다. 일부 국가는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 감소로, 또 다른 국가는 과잉 인구로 골머리를 앓는다. 유엔인구기금(UNFPA)은 각국 정부가 내놓는 인구 대책이 “효과가 없을뿐더러 인권, 성평등 면에서 유해하다”고 단언했다. 19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 ‘80억 명의 삶, 무한한 가능성: 권리와 선택에 대한 사례’에서다.
UNFPA는 “국가가 출산율을 높이거나 낮추고 또 유지하려는 정책을 점점 더 많이 채택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인구라는 숫자에 매몰되는 정책에는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인구 변화를 예측해 기회로 활용하는 것, 여성이 출산에 대해 더 많은 권한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UNFPA는 “인구는 그 자체로 문제도, 또 해결책도 아니다”라면서 “정치권과 언론이 인구와 관련한 과장된 내러티브를 포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각국에선 인구를 놓고 정반대 정책이 동시에 펼쳐진다. 2020년 유럽 최저 수준의 출산율(1.28)을 기록한 폴란드는 인위적 인구 늘리기에 힘을 쏟는다. 같은 해 장애 등 태아의 선천적 결함으로 인한 임신중단(낙태)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달 19일(현지시간) 중국을 제치고 '세계 인구 1위'에 오른 인도는 인구 억제에 집중한다. 일부 주는 2021년 불임 수술을 하는 이들에게 40달러(약 5만3,000원) 안팎을 주는 정책을 도입했고, 자녀가 둘 이상이면 각종 정부 지원을 끊거나 공직에 진출할 수 없도록 하는 등 불이익을 준다.
목적은 딴 판이지만 인권에 유해하기는 마찬가지다. 출산율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는 정책은 여성의 권리를 해치는 결과로 이어진다. UNFPA는 “파트너가 있는 전 세계 여성의 44%가 자기 신체에 자율성을 행사할 수 없다”고 했다. 피임, 건강 관리, 성관계 여부 등에 대한 선택권이 없다는 것. 또 “전 세계적으로 모든 임신의 절반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고 UNFPA는 짚었다.
“두려움을 제쳐두고 인구 자체를 목표를 삼는 기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출산율 변동에 적응해 인구 통계학적 회복력을 높이는 쪽으로 정책 중심을 전환해야 할 때다.” 카넴 UNFPA 사무총장의 말이다. 국가가 인구 변화를 ‘통제’하기보다 ‘적응’해야 한다는 취지다.
저출생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국가 생산성 하락을 이유로 든다. 그러나 UNFPA는 국가 생산성 향상에는 저출생 해소보다 노동시장의 성평등 실현이 효과적이라면서 “아이를 갖는 시기와 방법을 통제할 권한을 여성에게 더 부여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최근 유엔 연구에서도 저출생·고령화 사회의 경제성장을 유지하는 데는 여성이 더 많은 자녀를 갖도록 강제·장려하는 것보다 성평등이 더 도움이 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UNFPA는 인구와 관련한 ‘올바른 질문’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고령화를 어떻게 막을 수 있나’가 아닌 ‘①노인들을 평생 정책적으로 지원할 방안’을 고민하고, ‘어떻게 여성이 아이를 더 낳게 할 수 있나’ 대신 ‘②여성들의 생식권을 어떻게 지원할 수 있나’를 물어야 한다. 또 ‘인구 변화를 어떻게 막나’보다 ‘③회복력 있는 사회를 위해 인구 변화를 더 잘 예측할 방법은 무엇인가’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