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프랑스 파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본부에서는 '중소기업 및 기업가정신 위원회'(Committee on SMEs and Entrepreneurship)가 열렸다. OECD 회원국 중소기업 장관회의 정책개발을 위한 회의였는데, 필자는 위원회 초청으로 '사람중심 기업가정신'에 대해 발표했다. 필자의 발표 이후, 참석자 전원은 OECD 회원국의 중소기업 정책도 사람 통제가 아닌, 사람 자율성을 중시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사실 한국을 포함한 OECD 회원국들의 당면 문제는 생산성 증가율의 둔화다. 지난 20년 디지털화에 집중했지만, 생산성 증가속도가 둔화하고 있다. 최근의 인플레이션과 청년들의 고용기회 감소도 그 때문이다. 그 해결책으로 한국 정부가 다시 노동시간을 늘리는 정책을 추진하지만, 양적 정책으로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더 오래 일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업무에 진정으로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사람중심의 기업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이와 관련, 놀라운 통계가 있다. 한국 기업에서 업무에 집중하는 직원은 전체의 20% 이하라는 것이다. 5명 중 1명 정도만 창의적으로 몰입해서 일할 뿐 나머지 80%는 습관적으로 몸만 행동할 뿐이다. 이 수치는 갤럽에서 지속적으로 조사되고 있다. 요컨대 기업의 최근 생산성 증가율 정체는 직원들의 역량을 활용하지 못하고 낭비하는 기업문화 때문이라는 얘기다.
몸만 출근한 80% 직원의 마음을 얻는 방법은 뭘까. 관료적 기업문화를 깨는 것이고, 바로 거기에 한국 기업의 생산성 정체를 반전시킬 비결이 있다. 노동시간을 늘리는 대신 업무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기업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이쯤 되면 "말만 그럴듯하지, 그런 변화가 가능하겠느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그런 분들이라면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 주가흐름을 챙겨보길 바란다. 1999년 58달러대였던 주가가 2013년 말까지 30달러대로 하락하더니, 이후 추세적으로 상승해 2023년 현재 280달러대까지 상승했다. 주가가 맥을 못 추던 '잃어버린 15년'은 빌 게이츠 창업자를 대신한 스티브 발머가 이끌던 시기다. 발머는 무조건 100명 중 20%를 잘라내고 상위 20%에 엄청난 보너스를 주는 상대평가 시스템(스택랭킹·Stack Ranking)을 유지했다. MS는 협력이 없고 조직 이기주의와 관료주의가 판치는 정치판이 됐다. 그러나 2014년 새로운 CEO 사티아 나델라가 공감하는 기업문화를 구축하면서 기업가치가 급등했다. 나델라는 동료를 적으로 만들었던 상대평가제 해체와 공감·권한위양을 통한 부서 간 협력문화를 구축했다.
코로나 기간 세계는 관료주의의 부작용을 경험했다. 관료주의의 일사불란한 통제는 효율성이 높아 보이지만, 불확실성 증가는 환경변화에의 신속 대응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이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에 우리 기업에 '관료주의'가 자리 잡는다면 미래는 없다. OECD 위원회도 동의했듯이, 대안은 '사람중심주의'(Humanocracy)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관료적 성과주의 KPI(Key Performance Index)를 사람들의 인심을 얻는 사람중심주의의 KPI(Keep People Inspired)로 바꾸어야 한다.
세계 최고의 팀들에는 몰입과 협력을 만들어내는 '영감 받는 문화코드'(culture code)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