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적 여인의 얼굴이 클로즈업된 포스터, 그리고 작품 제목 '키스'. 어떤 상상력을 동원해도 이 작품의 실체를 파악하려는 시도는 대부분 실패할 것이다. 이 작품을 설명하는 수식어는 '반전'이다. '예측 불허', '허를 찌르는' 등 여러 수식어가 등장하지만 연극 ‘키스’를 이야기하면서 '반전'을 언급하지 않는 소개글은 거의 없다. 그만큼 반전은 이 극의 중심 콘셉트다.
가히 영화 '식스센스'급이라고 할 정도로 극적인 반전은 관객을 작품의 색다른 세계로 안내한다. 이 작품의 매력이 반전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반전으로만 소개되는 것은 좀 서운하다. 반전은 하나의 도구일 뿐 연극 '키스'는 그보다 더 다양한 함의를 담고 있고, 그로 인한 울림도 큰 작품이다.
필자는 아무런 정보 없이 단지 반전이 대단한 작품이라는 점만 알고 '키스'를 보았다. 작품의 정보를 최소화해야 관람할 때 극대화된 감동과 충격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극단 측에서는 공연 전 작품에 대한 소개를 가급적 피했다. 이 글도 제작 측의 의도대로 내용 설명을 가급적 자제하면서 연극을 소개해 보려 한다.
주요 배경은 2014년 시리아 다마스커스, 이것이 작품의 첫 번째 힌트다. 유세프(김세환)와 바나(이다해) 커플과 아메드(정원조)와 하딜(김유림) 커플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유세프와 아메드, 바나와 하딜은 각각 절친한 사이다. 두 커플이 인기 TV 연속극을 함께 보기로 한 날, 아메드는 여자친구인 하딜에게 프러포즈를 하려고 했는데, 이보다 앞서 도착한 유세프가 아메드의 여자 친구인 하딜에게 사랑을 고백하면서 사달이 난다. 난처한 상황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진심을 숨기지만 결국은 드러나고야 마는 막장 코미디 같은 상황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도대체 반전은 언제 나오는지 궁금증을 안고 지켜보다 보면 1막이 끝난다. 연극 '키스'는 일반적인 연극의 막 구조로 돼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명확하게 상황이 구분되는 세 개의 극으로 전개된다. 편의상 세 개의 상황을 1막, 인터미션, 2막으로 구분할 수 있다. 1막이 진행되는 동안 센스 있는 관객이라면 포스터 속 인물에 대해 의문을 품을 것이다. 저 배우는 왜 등장하지 않는가, 이것이 작품의 두 번째 힌트다.
막장 드라마처럼 전개된 1막이 끝나고 인터미션에서는 1막의 내용을 중심으로 진지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분위기는 1막과 사뭇 다르다. 인터미션에서 주고받는 내용은 동일한 콘텐츠를 달리 해석하는 '해석'의 문제를 다루는 듯도 하고 지구의 어느 곳에선가 자유를 억압하고 폭력을 가하는 끔찍한 현실이 벌어지고 있음을 고발하고 있는 듯도 하다.
진지한 주제를 고민하게 하는 인터미션 후 펼쳐지는 2막은 톤이 다른 1막의 데칼코마니다. 1막이 멜로드라마라면 2막의 장르는 비극이다. 2막의 후반부는 1막에서 톤을 달리할 뿐만 아니라 추가되는 부분이 있는데 이것을 '키스'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이자 에필로그로 봐도 좋을 것이다.
이 에필로그는 연극 '키스'의 핵심을 농축해 담은 부분이다.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캐릭터 그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관객의 이야기이죠. 이걸 보고 느끼는 단 몇 분만이라도 현실이 아닌 것들에 대해 말이죠. 현실은 복잡하고 우리들은 회의적이 돼 버렸습니다. 특히 사랑에 대해서는. 그래서 사랑이 더욱 강력해지죠. 제 말이 이해가 가실지 모르겠군요."(원래 대사를 살짝 변형했다.) 에필로그는 인터미션에서 포스터 속 여인의 대사에 대한 연극적 대답이다. 연극 '키스'는 우리가 팝콘을 먹고 즐기며 TV 연속극을 보고 있는 순간에도 지구 어딘가에서는 끔찍한 폭력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고발하는 연극이자, 그 순간에도 힘을 발휘하는 '사랑'에 대한 극이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이야기는 최대한 줄여 소개하다 보니 의미가 모호한 구석이 있는 리뷰가 돼 버렸다. 이 글은 저장해 뒀다가 작품을 본다면 왜 이런 고충의 글을 남기게 됐는지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을 소개한 필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는 이도 한 명쯤 있지 않을까. 공연은 30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