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미국 외교관도 피습... 수단 유혈충돌 사태 '통제 불능' 치닫는다

입력
2023.04.18 18:15
나흘째 군벌 간 교전 이어져... 최소 185명 사망
EU 대사관저·미국 외교관 차량도 공격 대상 돼
국제사회 '휴전 촉구'에도 사태 장기화할 전망

북아프리카 수단의 군부 세력 간 무력 충돌이 18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낳은 것은 물론, 현지에 체류 중인 외국 외교관에 대한 위협으로까지 번지는 등 사실상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닫고 있다. 17일(현지시간) 수단 주재 유럽연합(EU) 대사관저와 미국 외교관 차량이 공격을 받은 것이다. 국제사회의 휴전 촉구에도 불구, 교전이 전국으로 확산하면서 사상자는 벌써 2,000명을 넘어섰다.

수단 군벌의 타깃이 된 건 EU와 미국의 외교관이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주수단 EU 대사가 거주지에서 공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다만 아일랜드 출신인 에이단 오하라 수단 주재 EU 대사는 심각한 부상을 당하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 중인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같은 날 “(수단에서) 미국 외교관이 탄 차량이 총격을 받았다”며 “모두 안전하고 다치지 않았으나, 이는 무모하고 무책임하고 위험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사태는 외교관을 안전하게 보호할 의무가 명시된 ‘비엔나 협약’마저 유명무실해졌을 정도로 수단 상황이 무질서하다는 방증이다. 지난 15일 새벽 시작된 정부군과 준군사조직인 신속지원군(RSF) 간 무력 충돌은 나흘째인 18일에도 이어지고 있다. RSF는 수도 하르툼 국제공항과 대통령궁 등을 장악했다고 주장했다. 수도권뿐 아니라 수단 전역에서 기관총과 전차, 전투기 등을 동원한 전투가 벌어졌고, 이날까지 사망자는 최소 185명, 부상자는 1,800명으로 파악됐다.

“사망자 매장도 못해”... 숨죽인 국민들

수단의 유혈 충돌은 한때 ‘정치적 동지’였던 두 남자가 서로에게서 등을 돌리며 시작됐다. 군부의 1인자이자 사실상 대통령 역할을 하는 압델 파타 부르한, 그리고 RSF의 지도자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는 2019년 함께 쿠데타를 일으켜 30년간의 독재정권을 축출했다. 하지만 최근 RSF의 정부군 통합 문제를 두고 완전히 갈라섰다고 영국 BBC방송은 보도했다. 양측은 상대방이 전투를 개시했다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그 결과, 수단 국민들은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하르툼 의과대학의 한 의사는 영국 가디언에 “우리는 정부군과 RSF가 벌이는 십자포화 중간에 놓였다”며 “그들은 서로한테 총을 쏘고, 우리는 그 사이에 있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라이벌 관계인 수단의 장군 두 명이 500만 인구의 도시(하르툼)를 ‘개인전 종목 경기장’으로 탈바꿈시켰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피해는 고스란히 민간인 몫이 되고 있다. 수백만 명이 피란민으로 전락해 식량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전기와 수도도 끊겼다. 하르툼의 일부 병원에선 혈액 및 수혈 장비 등이 바닥났다. 하르툼 주민 아와데야 마흐무드 코코는 “16일 이웃집에 포탄이 날아와 최소 3명이 죽었다. 시신을 병원으로 데려가긴커녕, 땅에 묻을 수도 없었다”고 AP통신에 말했다.

국제사회의 '휴전 촉구'도 공허한 외침

수단은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에 인접해 있을 뿐 아니라, 미국과 러시아 간 경쟁에서도 중요한 지정학적 요충지다. 미국은 수단의 민주화 전망을 감안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했고, 러시아는 민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을 파견해 금광 개발 등을 시도하고 있었다. NYT는 이번 무력 충돌이 주변국 개입을 촉발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미 하르툼에서 북쪽으로 약 201㎞ 떨어진 메로에 지역에선 이집트 군인 30여 명이 전투기 7대와 함께 RSF에 포로로 잡히는 일도 발생했다. 이집트는 "훈련 목적 파견"이라고 해명했으나, RSF는 정부군 지원 의도를 의심한다.

미국과 유엔, EU, 아프리카연합, 중국 등은 휴전과 대화를 촉구했다. G7 외교장관들도 18일 공동성명을 통해 “사전 조건 없이 적대 행위를 즉시 종식하고 협상에 복귀하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양측은 상대방의 항복만 요구하고 있어 무력 충돌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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