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17일(현지시간) 미국에서 고금리 저축 상품을 출시했다. 연이율이 4%대로 미국 은행 평균 금리의 10배가 넘는다. 간편결제, 신용카드, 선지불 후결제(BNPL) 서비스에 이어 저축통장까지. 애플이 미국 금융시장의 기존 질서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메기'로 등장하는 모양새다.
애플은 이날 연리 4.15%의 저축계좌를 내놨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골드만삭스와 협력해 저축계좌를 내놓겠다고 예고한 지 6개월 만이다. 애플이 제시한 연 이자율은 저축성 예금 이율의 전국 평균인 0.35%와 비교해 10배 이상 높다. 이자율이 높은 순서대로 줄 세우면 전체 11번째에 해당할 정도의 고금리라고 경제매체 CNBC는 전했다.
계좌는 애플 아이폰에 기본적으로 깔린 지갑(월렛)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개설할 수 있는데,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아이폰 이용자 중에서도 미국 애플카드 보유자만 개설이 가능하다. 애플카드는 2019년 애플이 선보인 신용카드로, 사용처 등에 따라 이용 금액의 최대 3%를 캐시백 형태로 제공받는다. 애플은 이용자가 계좌를 만들면 애플카드 사용에 따라 생기는 캐시백 금액이 자동으로 이 계좌에 입금되도록 했다. 이를 포함한 모든 돈의 입출금엔 수수료가 붙지 않으며 계좌 유지에 필요한 최소 예치액도 없다. 단 미국 금융당국이 보증하는 25만 달러(약 3억2,900만 원)까지만 넣을 수 있다.
애플은 지난달엔 '디지털 외상'으로도 불리는 BNPL 서비스 '애플페이 레이터'를 미국에 시범 출시했다. 최대 1,000달러를 결제한 뒤, 최장 6주 동안 4회에 걸쳐 구매 대금을 나눠 낼 수 있는 단기 대출 성격의 서비스다. 애플은 2014년 애플페이를 처음 내놓은 이후 2017년 송금 서비스 애플캐시, 2019년 애플카드 등을 잇따라 선보여 왔는데, 테크업계에선 애플 금융업의 본격적 시작점을 애플페이 레이터로 본다. 앞서 나온 서비스들과 달리 기존 금융사와의 협력 없이 애플이 독자적으로 제공하는 첫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애플이 이처럼 금융 서비스를 확대하는 건 자체 생태계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애플은 아이폰으로 할 수 있는 서비스들을 하나씩 선보이며 '애플 서비스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한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는데, 금융 서비스는 그중에서도 핵심으로 꼽힌다. 음악을 안 듣거나 영상을 안 보는 사람은 있어도 돈을 안 쓰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이용자들을 생태계 안에 묶어두는 데는 금융 서비스만 한 게 없는 셈이다. 한국 소비자들이 애플뮤직, 애플티비보다 애플페이 개시 소식에 가장 뜨겁게 반응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시장에서는 애플이 가진 브랜드 영향력을 감안하면 기존 은행들의 자리를 위협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실리콘밸리은행의 붕괴로 은행의 안전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애플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밍 마 컬럼비아대 재정학 교수는 "애플의 인지도와 결합된 높은 금리는 은행산업의 안전성을 우려하는 고객들에게 특히 매력적일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