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관심사에 청년은 없었다"... 1년 전 대선 '구애 경쟁'과 딴판

입력
2023.05.0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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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 여야 주요 회의 모두발언 분석
대선 후 2030 구애 대신 상대 비판 몰두
일자리·육아휴직·연금개혁 이슈는 소외
'미래 불확실성' 해소 위한 의제 발굴해야

지난해 3·9 대통령선거에서 국민의힘의 전략 중 하나는 '세대포위론'이었다. '청장년층은 진보, 고령층은 보수'라는 통념을 깨고 청년층을 보수진영으로 끌어들여 전통적으로 더불어민주당 지지도가 높은 40대를 포위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실제 대선에선 2030세대 남녀 표가 갈리면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이재명 민주당 후보에게 표가 골고루 분산됐다. 이전까지 2030세대가 민주당에 공고한 지지를 보낸 점을 감안하면, 국민의힘의 청년층 공략이 일정 정도 성공을 거두면서 대선 승리를 가져왔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2030세대의 보수진영 지지는 1년 만에 헐거워졌다. 이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2030세대의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율 하락이라는 객관적 지표로도 확인된다. 다음 총선을 1년 앞두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여권은 청년층 지지를 회복하기 위해 천 원의 아침밥 사업 확대 등을 내세우고 있지만, 반응이 미지근하다. 다만 보수진영 지지에서 이탈한 청년들은 민주당에도 마음을 선뜻 주지 않고 있다. 지난 1년간 무슨 일이 있었기에 청년층이 여야를 외면하고 있는 걸까.


국민의힘, 청년 관심사보단 '민주당·문재인 공격'

한국일보는 지난해 대선 이후 4월 19일까지 열린 여야 대표의 최고위원회의(비대위 회의 포함) 모두발언과 원내대표의 원내대책·정책조정회의 모두발언을 전수분석해 청년층 관심사와 얼마나 부합하는지 살펴봤다. 여야 대표와 원내대표들의 주요 회의 모두발언은 각 당의 가장 공식적인 메시지로 볼 수 있다.

국민의힘 대표(직무대행·비상대책위원장 포함)가 모두발언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민주당'이었다. 449회로, 하루에 한 번 이상 언급한 셈이다. 김기현 대표가 최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이재명 대표 최측근인 정진상과 김용에게 대장동의 검은돈이 흘러 들어간 정황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고 주장한 것처럼, 야당에 대한 비판이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다.

'이재명' 대표가 240회로 두 번째였고, '문재인' 전 대통령도 145회 소환됐다. 이 대표에 대해선 "이 대표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와 조폭의 그림자, 마치 영화 아수라처럼 등골이 오싹하고 섬뜩하다"(김 대표) "이 대표의 비리 범죄혐의가 차고 넘친다"(정진석 전 비대위원장) 등 사법리스크와 관련된 정치공세성 발언이 대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대장동'(32회), '쌍방울'(32회) 등도 자주 등장했다. 문 전 대통령의 경우 "문재인 정부 5년간 표 주기 선심성 정책, 표심 정책으로 국가채무 400조 원 넘게 급증했다"(정 전 위원장)처럼 여당 회의의 단골 메뉴였다.

외교안보도 주요 소재였다. 특히 '북한'(164회)에 관심이 많았다. 단순히 북한 도발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 "민주노총의 많은 집회 시위 역시 북한의 지령과 연결돼 있다는 증거가 드러나고 있다"(김 대표) 등 현안과 관련짓는 경우가 많았다. 그밖에 '민생'(93회) '검수완박'(24회) '이태원'(22회) 등이 자주 언급됐다.

與 대표들의 '일자리' 언급은 단 2회

여당 지도부가 민주당과 전임 정권 공격에 치중하는 동안 청년 이슈는 외면받았다. 지난 1년간 국민의힘 대표가 모두발언에서 '청년'을 언급한 횟수는 6회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구체적인 비전 제시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 청년들이 유턴해 오는, 그리고 경제가 활력 있는 광주 전남을 함께 만들어가자"(정 전 비대위원장) 등 원론적 언급이었다. 청년층의 관심도가 높은 '일자리'는 2회 언급됐고, '육아' '출산휴가' 등은 단 한 차례도 거론되지 않았다.

정치권이 청년층을 칭할 때 주로 사용하는 'MZ'는 11회 나왔는데, 주로 노동 이슈와 연계됐다. 윤석열 정부의 3대 개혁과제 중 하나인 노동개혁을 지원하면서 '청년층이 민주노총 등 기존 노조에 호응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부각하는 데 힘썼다. "MZ 세대들은 불법적, 폭력적 투쟁일변도의 노조활동에 큰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권성동 전 당대표 직무대행) 발언이 대표적이다. 국민의힘 대표 모두발언에서 '노조'는 30회, '민주노총(민노총 포함)'은 26회 등장했다.

지난 대선에서 청년층 공략에 앞장섰던 이준석 전 대표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나 여성가족부 폐지 등을 강조했다. '전장연'을 4회, '장애인'을 7회, '여성가족부'를 2회 거론했다. "젊은 세대의 흥미를 끌려면 논쟁적 지점이 있어야 한다"는 지론 때문으로 보인다. 그가 징계를 받은 후로 장애인이나 여성 이슈를 꺼낸 국민의힘 대표는 없었다.

예산, 법안 등 정책 이슈를 다루는 원내대책회의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대선 이후 1년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모두발언에서 △'민주당'(516회) △'문재인'(127회) △'이재명'(99회) △'민생'(85회) △'북한'(82회) 순으로 언급을 많이 했다. '청년'은 5회, '일자리'는 6회, '육아'와 '출산'은 2회씩 거론되는 데 그쳤다. 정책 주도권을 쥐기 어려운 여소야대 정국에서 원내대표도 야당과 전임 정권 비판에 주력한 것이다.

민주, '윤석열' '검찰' 비판 주력... 이재명 '청년'보다 '노인'

민주당도 청년층이 귀를 기울일 법한 메시지를 발신하지 않았다. 지난 대선 이후 민주당 대표가 최고위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민생'(296회)이었지만, '윤석열'(250회), '검찰'(203회) 등 여권에 대한 비판도 이에 못지않았다.

공세 대상인 '국민의힘'과 '김건희 여사'도 각각 79회, 40회 언급됐다. '인사 참사'(12회), '외교 참사'(9회) 등 '참사'(115회)가 유독 많이 거론됐다. 외교안보 이슈에선 '북한'(51회)보다 '일본'(127회)에 관심이 더 많았다. 윤 대통령의 대일외교를 겨냥한 비판이 많았다는 뜻이다. 원내대표가 주재하는 원내대책회의·정책조정회의에서도 '윤석열'(529회) '검찰'(261회) '국민의힘'(253회) 등이 주요 화두였다.

민주당 대표는 국민의힘과 달리 '청년'(118회)에 대한 언급이 적지 않았다. 반대로 'MZ'(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쓰지 않았다. MZ의 경우 "포괄하는 연령대가 너무 넓다"는 비판이 있는 만큼, '청년'이라는 일반적인 어휘를 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청년층의 관심사였는지는 물음표가 붙는다. '일자리'는 19회 나왔는데, 이 중 6회만 '청년 일자리' 관련 언급이었다. 모두 20대인 박지현 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했다. 반면 이재명 대표의 일자리 언급(13회)은 모두 '노인 일자리'나 '공공 일자리'였다. 청년층 관심사인 '연금개혁'에 대해선 박 전 위원장이 "청년이 연금개혁 논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으면 한다"고 7차례 언급했지만, 이 대표는 '노인 기초연금'(5회)에 관심이 더 많았다. '육아'를 언급한 민주당 대표는 없었고, '출산'만 3회 언급됐다.

청년층 일자리·출산·연금개혁에 관심... 정치권이 무당층 양산

여야 지도부가 청년층의 관심사와 무관한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은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청년층이 무당층에 머물러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해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 유권자 2,5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서울 지역 18~39세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경제 이슈는 '청년 일자리 확대'였다. 경기·충북·충남·전북 지역의 2030세대도 '청년 일자리'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실시한 정책 관심도에 대한 대국민 설문조사에서는 '고용 지원'(일자리) 외에 △육아휴직 △출산휴가 △연금 개혁 △기후변화 등이 20대와 30대에서 공통적으로 40% 이상의 지지를 받았다. 청년층이 직면한 현실적 어려움 외에도 미래의 삶을 좌우할 수 있는 현안에 관심을 보인 것이다.

지난달 28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4월 4주 차 여론조사 결과, 20대에서 무당층이 48%나 됐다. 이는 같은 세대에서 국민의힘 지지율(22%)과 민주당 지지율(27%)을 합한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30대에선 국민의힘 지지율은 26%, 민주당 지지율 35%, 무당층 35%로 나타났다.

여야는 최근 부랴부랴 청년층 구애 작전에 나섰지만, 얼마나 청년의 관심을 되살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여당에선 김기현 대표가 '천 원의 아침밥' 사업 전국 확대를 주문한 데 이어, 1일 출범한 '청년정책네트워크'의 위원장을 맡아 '토익 성적 유효 기간 2년→5년 연장'을 발표했다. 김 대표는 "우리 당에서 가장 아픈 손가락이 청년 문제"라며 "청년정책을 공급자적 시각에서 추진하니 실제 현장에서는 호의적인 반응이 없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학자금 이자 면제법'(학자금상환법 개정안) 등을 통해 청년 표심 잡기에 나선 상태다.

"내년 총선서 기권할 수도... 지속가능성 논해야"

전문가들은 여야 지도부가 정쟁에만 몰두한 상황에서는 2030세대의 '탈정치화'가 가속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국민의힘의 청년 정책에 대해 "(3대 개혁 등) 기조 자체는 2030세대에 친화적일 수 있지만 공감, 소통이 부족하다"고 평가했고, 민주당에 대해선 "현금 복지, 반일 등 메시지 자체가 2030세대에 친화적이지 않다"고 했다. 엄 소장은 그러면서 "청년층이 관심을 많이 갖는 분야는 연금개혁 등 지속가능성에 대한 것"이라며 "이대로면 내년 총선에서 2030세대 상당수가 투표에서 기권을 선택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던 2030 남성들이 여권에 실망해 표를 회수했지만, 민주당으로도 갈 수 없는 게 현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천 원의 아침밥' 등의 사업보다는 일자리 마련 등 청년층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여줄 수 있는 정책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영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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