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성의 K팝 사랑은 한국에서도 유명하다. 학생 때부터 한국 아이돌과 비슷한 헤어스타일과 화장법을 익히고 동경하는 가수와 노래와 춤을 연습한다. 한국어를 독학으로 익히고 한국에서 데뷔를 꿈꾸기도 한다. 4년 전 한국에서 데뷔했던 그룹 '스카이걸스(SKY GIRLS)' 멤버 4명도 그랬다. 모두 일본인이었던 이들은 "왜 일본인이 한국에서 데뷔하려고 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K팝이 좋아서"라고 대답했다. 한국 아이돌 시스템은 이들의 사랑을 이용했다. 이들은 최장 7년 계약이 원칙인 한국의 표준계약서 제도 등을 잘 몰라 한국의 소속사와 10년 계약을 맺었다. 소속사로부터 무리한 다이어트와 가혹한 스케줄을 강요 받던 이들은 견디지 못하고 탈퇴한 후 모두 일본으로 귀국했다. 소속사는 계약 위반이라며 1,500만 엔(약 1억4,600만 원)을 요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도쿄지방법원에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지난달 판결에서 소속사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고 멤버들의 계약 해지를 인정했다.
이달 12일 TV아사히 계열 인터넷방송인 아베마TV에 출연한 스카이걸스 멤버 카리나와 루나는 멤버들이 메신저 앱을 통해 소속사에 시시각각 모든 개인 동선을 보고해야 했다고 말했다. "슈퍼마켓에 도착했습니다", "집에 도착했습니다", "지하철을 탔습니다" 같은 보고를 계속했다. 사생활은 전혀 없었다.
가장 힘든 것은 체중 감량이었다. 소속사 대표는 "살을 빼지 않으면 스케줄을 모두 취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걸그룹은 키에서 120을 빼야 정상 체중"이라는 이상한 논리를 들이댔다. 키가 165cm라면 몸무게는 45kg여야 한다는 것이다. 밥을 먹을 때마다 무엇을 얼마나 먹었는지 사진을 찍어서 보고하고, 아침저녁으로 체중을 측정해 소속사 대표에게 전송했다. 밥은 4분의 1공기씩만 먹었다. 가혹한 다이어트 때문에 심한 어지럼증을 느끼고 매일 코피를 쏟기도 했지만 쉴 시간도 주지 않았다. 법정에서 소속사는 "한국 아이돌은 이 정도는 다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고도의 체중 감량을 요구하면서도 그 방법은 제대로 지도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규모가 영세했던 소속사는 정작 중요한 춤과 노래 지도에는 소홀했다. "유튜브 영상을 보고 연습해라", "이 사람을 흉내 내라"는 수준에 그쳤다. "이런 목소리는 어떻게 내느냐"고 창법을 질문했더니 "나도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소속사 대표는 화를 내며 혼내는 게 일상이었고, 몸을 체크하겠다며 성희롱까지 했다. 성형수술을 강요한 뒤 수술비는 멤버들에게 부담시켰다.
같은 방송에 출연한 저널리스트 김경철씨는 "대형 기획사는 책임감을 가지고 젊은 여성들을 키우지만 영세한 기획사는 가혹한 방식으로 착취를 한다"면서 "일본인들이 한국 기획사를 선택할 때 충분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카이걸스 멤버들은 일본 기업에서 회사원 생활을 하고 있다. "혹시 다시 아이돌이 되고 싶은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들은 "솔직히 오디션을 보러 갈 자신이 없다. 마음이 꺾여버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