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개정으로 동물 법적 지위 생겨도 민사집행법·동물보호법 등 추가 개정돼야"

입력
2023.04.15 11:00
동물단체, 여야 민법개정 합의에 
"동물 삶의 질 높일 계기 될 것" 환영
입법 공백 문제 해결해야 하는 과제도

여야가 동물의 법적 지위를 명시하는 조항이 신설된 민법 개정안을 이달 중 심사, 처리하는 데 합의하면서 동물단체들이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다만 민법 개정이 선언적 의미에 그치지 않으려면 동물이 물건이 아닌 법적 지위를 갖게 되면서 생기는 입법 공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과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4일 동물을 물건으로 규정하는 민법 조항을 4월 임시국회에서 우선적으로 바꾸는 데 합의했다. 합의문에는 "동물에 대한 국민의 변화된 인식을 반영하고 동물의 법적 지위를 개선하기 위해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는 점을 규정한다"는 설명이 담겼다.

동물단체들 “동물과 관계 재설정 계기 될 것”

동물단체들은 "동물의 법적 지위를 물건과 구분하는 것은 우리 사회 전반에서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고 동물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환영했다.

동물자유연대는 "우리나라 법이 여전히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점은 부끄럽다"며 "소유자인 가해자로부터 피학대동물을 구조∙보호하는 게 제한되고, 민사집행과정에서 압류대상이 되는 현실을 방관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정부는 동물보호법을 동물복지법으로 개편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지만 물건에 불과한 동물의 법적 지위로 인해 근본적인 법제 개선이 늦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는 "(민법 개정은) 자신이 기르는 동물이라도 소유자의 권리 행사 이전에 동물복지를 고려해야 하고 돌봄 의무를 지는 게 상식이 되는 사회로 나가는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반려동물뿐 아니라 농장동물, 실험동물 등 상업적 목적으로 길러지는 동물의 삶의 질도 높일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는 데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효성 있으려면 후속입법조치 반드시 뒤따라야

민법 개정안은 동물학대 사건의 위자료 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재언 동물자유연대 법률지원센터 변호사는 "그동안 동물이 사망하거나 상해를 입었을 때 '동물값'만 물어주면 됐다"며 "반려동물이 가족의 구성원으로 인정되면 동물 자체 생명권에 대한 위자료를 높이고 유대감을 고려해 정신적 손해배상을 보다 쉽게 인정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더 나아가 동물 자체가 받는 두려움과 고통에 대한 위자료도 언젠가는 인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민법만 개정되고 후속입법조치가 따르지 않으면 실질적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예컨대 반려동물을 법원의 강제집행 대상에서 제외하려면 동산을 압류할 수 있도록 한 민사집행법 개정이 뒤따라야 한다. 또 학대 처벌 규정 강화나 학대자의 입양, 사육 제한을 막기 위해서는 동물보호법 개정도 필수다.

한 변호사는 "동물을 물건이 아니라고 규정하는 개정안의 방향에 맞춰 동물 관련 법령이 추가로 개정돼야 입법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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