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졌던 이하늬가 찾은 '꽐라섬' [인터뷰]

입력
2023.04.18 16:50
이하늬, '킬링 로맨스'로 스크린 복귀
재회한 이선균·공명 향한 신뢰


여래가 어떤 피로감을 겪었을지 잘 알아요. 저도 부러진 적이 있거든요.

배우 이하늬에게는 한 달에 하루 휴차가 감지덕지하게 느껴졌던 때가 있었다. 그야말로 '살벌하게' 일을 하던 시절이었다. 2년 정도 휴식 없이 일을 하니 가야금을 연주하는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허리 건강에 문제가 생겼고 주저앉은 뒤에는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이하늬가 여래처럼 '부러진' 순간이었다.

이하늬는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영화 '킬링 로맨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킬링 로맨스'는 섬나라 재벌 조나단(이선균)과 운명적 사랑에 빠져 돌연 은퇴를 선언한 톱스타 여래(이하늬)가 팬클럽 3기 출신 사수생 범우(공명)를 만나 기상천외한 컴백 작전을 모의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다시 만난 이선균·공명

'내게 이런 이미지가 있으니 앞으로 이런 걸 하면 좋겠다'는 많은 연기자들이 하는 생각이다. 이하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킬링 로맨스'와 관련해서는 예외였다. 이하늬는 "'이 영화가 정말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다. 내가 출연하지 않더라도 꼭 나왔으면 좋겠는데 만약 역할을 맡을 수 있다면 기꺼이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독특한 매력의 '킬링 로맨스'가 한국 영화 시장에 화두를 던질 수 있는 작품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콘텐츠가 한국 영화의 힘이고 원동력이었죠. MZ 세대가 이 영화를 어떻게 볼지 궁금해요. 또 다른 창작자가 돼 영화를 제작할 이들에게 '킬링 로맨스'가 다양한 색깔을 가진 영화를 만드는 기반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선균 공명은 '킬링 로맨스'를 통해 이하늬와 함께했다. 이하늬는 13년 전 방영된 MBC 드라마 '파스타'에 함께 출연했다 재회한 이선균에 대해 "정말 좋은 배우인 듯하다. '어떻게 저렇게 현실에 착 붙는 연기를 하면서 코미디를 잘 살리나' 싶다. 같이 작업하는 사람이 너무 수월하다"고 말했다. 과거 '극한직업'으로 호흡했던 공명 또한 이하늬가 여래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하늬는 "공명씨는 내가 아끼는, 남동생 같은 배우다. 서 있기만 해도 눈이 범우처럼 보이더라"는 이야기로 동료를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하늬가 알게 된 휴식의 중요성

이하늬는 여래 캐릭터에 공감했다. 그는 "육체적 노동보다 더 힘든 게 정신적 노동이다. 여래는 사람들한테 노출돼 있고 그들이 알아보는 삶을 살고 연기를 할 때는 감정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야 한다. 어떤 피로감인지 잘 안다. 나도 일을 하다 부러진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영화 '부라더' '침묵', 드라마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 예능 '겟잇뷰티 2017' 등의 일정을 소화했던 과거의 이하늬에겐 한 달에 하루 휴차가 감지덕지였다. 이하늬는 "'어떻게 이동하면서 쪽잠을 자고 정신 차려서 그걸 다 해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기했다. 박사 과정을 하며 연주회까지 했다. 쉴 때 완전히 쉬어야 한다는 걸 몰랐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위기가 찾아왔다. "가야금을 연주하는데 손이 떨리고 척추가 흔들렸다. 허리가 나갔다. 걷다가 주저앉았는데 못 일어나겠더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물론 지금은 이하늬 또한 몸이 건강하게 버텨줘야 일도 제대로 해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킬링 로맨스' 속 지친 여래는 꽐라섬으로 떠나는데 이하늬에게도 이러한 곳이 있다. 바로 가족들이 있는 집이다. 이하늬는 "집에 가면 새싹 같은 생명이 있는데 보기만 해도 정화가 되는 느낌이 든다"면서 2세를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딸을 마주하면 육체는 피곤해도 정신적으로는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는 듯한 느낌이 든단다. 이하늬에게 가족은 '확실한 안식처'다. 부모님은 '킬링 로맨스'를 감상한 후 이하늬에게 "재밌게 봤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민트초코맛 '킬링 로맨스'

이하늬가 생각하는 '킬링 로맨스'는 민트초코맛이다. 현장에서도 스태프, 배우들과 대화를 나눌 때 "우리는 어떻게든 한국 영화의 역사에 남을 거다"라는 말이 나왔단다. 이하늬는 작품에 대해 "처음 맛보면 치약 같기도 하다. '없던 맛이다. 민트면 민트고 초코면 초코지'라고 생각하다 젖어들게 된다"고 했다. 강렬한 여래 캐릭터도 이하늬에겐 도전이었다. 그는 "배우로서도 여래는 정말 특별했다. 여래처럼 먹는 것 하나까지 제재 받는 삶을 살게 되면 심신미약 직전 상태까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감정선, 에너지를 신경 썼다"고 말했다. 당찬 캐릭터가 아닌 불안정한 여래가 코미디를 한다는 점도 돋보였다.

이하늬는 여래를 연기하는 동안 자신이 배우로서 한 단계 성숙해졌다고 믿는다. 그에게 커리어에서 중요한 건 주관적 지표다. 이하늬는 "배우로서 뚜벅뚜벅 걸어나가고 싶다. 두려움 없이 캐릭터를 만나고 싶다"면서 연기를 향한 열정을 드러냈다. "'이 캐릭터는 내가 해보고 싶다. 이 영화로 내가 성장하겠다' 싶을 때 망설임 없이 작품을 선택하고 싶어요. '킬링 로맨스'가 그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촬영은 재밌었지만 치열했죠. 제가 성장한 부분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믿어요."

'킬링 로맨스'는 이날 개봉했다.

정한별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