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왜 이러냐 묻지도 못했는데···” 우편물 한 장으로 7년 직장 해고

입력
2023.04.15 12:00
[중간착취의 지옥도, 그 후]
<50>간접고용 노동자 릴레이 인터뷰①
은행 경비 용역 노동자 임성훈씨에게
민주당 중간착취방지법 추진 전했더니
“열흘 전 해고 당했어요”라는 답변이···

2년 만에 그에게 전화를 걸었던 건 전할 ‘소식’이 있어서였다. 아직은 조심스럽지만 만약 법이 만들어지면 급여가 조금 오를 수도 있을 거란 말을 하려고 했다. 안부를 묻는 말에 그는 멋쩍게 웃기만 했다. “저 일 그만뒀어요. 지점이 통폐합돼서요.”

그는 한 은행 지점에서 용역 경비원으로 일하는 임성훈(가명·38)씨다. 2021년 ‘중간착취의 지옥도’ 기획기사를 시작하며 인터뷰했을 때 언제 닥칠지 모르는 통폐합 우려로 “항상 불안하다”고 말했던 그다. (기사 보기 월 188만원 은행 경비원의 편지 "중간착취 없이 일하고 싶어요" ▶클릭이 되지 않으면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12516500001076 로 검색)

은행에서, 아니 그가 근로계약을 맺은 용역업체에서 해고된 건 불과 열흘 전이었다. 30대를 다 보낸 일터에서의 해고는 간단했다. 용역업체가 계약 만료를 알리는 등기 우편 한 장을 보낸 게 전부였다. 청천벽력 같던 지점 통폐합 소식은 지난해 연말 탕비실에서 은행원들의 아침 회의 내용을 우연히 듣고 처음 알게 됐다.

“그래도 7년이란 시간 동안 한 지점에서 일했는데 등기 우편 한 장으로 계약 만료를 알리기 전 전화로라도 ‘그동안 수고했다, 원한다면 근처 지점을 알아봐 주겠다’, 아니면 ‘통폐합으로 어쩔 수 없이 퇴사해야 한다’ 이런 말 한마디라도 용역업체에서 해 주었더라면 더는 필요가 없어져 버려진 것 같은 느낌은 덜 들었을 것 같아요.” 그는 서운함을 꾹꾹 누르며 말했다.


7년 만에 월급 200만원··· 여전히 ‘의문투성이’

성훈씨는 입사 7년 차인 올해 들어서야 처음으로 실수령 급여가 200만 원을 넘었다. 기본급(189만3,620원)에 식대(20만 원) 근속수당(18만6,530원) 연차수당(12만3,650원)이 더해져 세전 250만3,800원, 세후 216만 원을 받았다. 그는 “다른 사람이 보기엔 여전히 낮은 급여지만 입사 후 처음으로 실수령 200만 원이 넘었다는 것에 기뻤다”고 했다.

하지만 급여명세서는 의문투성이다. 기본급과 근속수당이 지난해보다 1만~2만 원 정도 줄었고, 식대 20만 원이 갑자기 생겼다. 올해부터 식대 비과세 혜택의 한도가 20만 원으로 늘었는데, 식대를 지급하면 용역업체는 이 금액만큼 4대 보험 사업자 부담금을 덜 내도 된다. 4대 보험료를 아끼려 식대를 신설하고 그만큼 기본급과 근속수당은 줄인 것으로 추측만 할 뿐이다. 성훈씨는 “용역업체에서 별다른 이야기가 없고 저도 돈에 관한 건 일절 안 물어봐서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서 이렇게 책정된 것 같다”고 말했다.

7년간 늘 그랬다. 있던 수당이 사라지고 월급 총액이 들쭉날쭉해도 혼자 이리저리 맞춰보고 계산하며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는 “그동안 용역업체에서 보내준 근로 계약서에 급여 항목이 변경된 부분이 여럿 있었는데 행여나 불이익이 있을까 봐 물어보지 못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원청인 은행이 그가 소속된 용역업체에 주는 그의 급여가 얼마인지는 물어볼 엄두도 못 냈다. 용역업체가 ‘관리비’ 명목으로 얼마를 떼어가는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 보통 경비원들은 월 50만~100만 원 정도를 중간착취 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용역 노동자도 임금에 목소리 낼 제도가 있었으면···”

그에게 소식을 전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중간착취를 막는 법을 노동개혁 핵심 사안 중 하나로 추진하겠다고 지난 1월 공식 발표했다고 말이다. 아직 구체적인 법안은 나오지 않았지만 공공발주 건설 공사 등에 이미 도입된 ‘임금 직접 지급제’처럼 원청이 임금 전용계좌를 통해 간접고용 노동자의 급여를 지급해 중간 착취를 막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성훈씨는 “급여 인상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용역업체에서 수없이 당한 탓에 불신이 앞선다. “문제는 노동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느냐는 거예요. 제가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최저임금이 낮아 기본급도 낮았지만 5일의 유급 휴가와 식대를 비롯한 각종 교육 수당이 복리후생비로 지급됐어요. 하지만 최저임금이 오르기 시작하자 용역업체가 일방적으로 수당들을 없애 최저임금이 오른 것만큼의 임금 인상 효과를 크게 느끼지 못했습니다. 경비원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아무리 최저임금이 오르고 좋은 법안들이 생겨도 용역업체가 허점을 노려 임금을 적게 줄 방법을 찾을 거라는 얘기도 적지 않아요.”

월급과 관련된 모든 결정은 예외 없이 ‘일방적’이었다. 유급휴가, 수당 폐지를 일방적으로 결정해 노동자들에게 문자로 1차 통보한 후 근로계약서를 통해 2차 통보하는 식이었다. 업체는 ‘싫으면 그만두라’며 밀어붙이고, 노동자들은 근로조건이 한참 후퇴한 근로계약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매년 반복됐다. 성훈씨는 “용역 노동자도 임금과 직접 연관된 사항들에 대해서는 반대도 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제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동의 대가 오롯이 받는 환경 만들어주길”

문재인 정부 시절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공약으로 일부 국책은행은 용역업체 소속 경비원들을 자회사 직원으로 고용했다. 성훈씨 역시 그런 자회사에 입사하는 게 목표다. 자회사 취업이 어려우면 다시 용역업체에 취업할 예정이지만 2, 3년 내에 자신이 가진 자격증(사회복지사, 간호조무사)을 활용할 수 있는 직업을 찾으려고 한다.

그가 자회사 소속 노동자로 좀 더 안정적으로 중간착취 없이 일할 수 있을지, 또다시 용역업체에 입사해 중간착취의 굴레에 들어가게 될지 아직 알 수 없다. 그가 법안을 준비하는 국회에 전하고 싶은 말이다.

“이미 한국 사회에 깊게 자리 잡은 중간착취와 간접고용 문제를 단시간에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분의 노력과 관심으로 지금처럼 한 걸음씩 나아간다면 언젠가 문제를 해결할 방법의 끝에 다다를 것으로 생각합니다. 소속의 차이로 차별받는 일 없이 같은 소속감을 느끼며 노동의 대가를 오롯이 받는, 일방적 통보가 아닌 의견을 물으며 소통하는 노동 환경이 되기를 바랍니다.”

‘중간착취의 지옥도’ 바로가기: 수많은 중간착취 사례와 법 개정 필요성을 보도한 기사들을 볼 수 있습니다. 클릭이 되지 않으면 이 주소 www.hankookilbo.com/Collect/2244로 검색해 주세요.

남보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