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기자가 10년 만에 본 면접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이 성적표는 기자가 인공지능(AI) 취재를 위해 AI 모의 면접을 치른 결과다. 한국일보 입사 때 꽤나 높은 경쟁률을 뚫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AI는 뭘 근거로 이런 최악의 평가를 내린 것일까?
이미 회사를 다니고 있느라 마음이 절박하지 않았던 탓에, 저도 모르게 뚱한 표정이 나왔을 수도 있다. 그래서 곧 취업시장에 나설 인턴기자가 더욱 비장한 각오로 도전했다. 그랬더니 인턴기자도 '합격 가능성 26%'에 '하위 7%'라는 박한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다음 면접에서 좀 더 웃는 표정과 적극적인 자세로 임했고, AI 면접관 평가는 후해졌다. '무표정이 많다'는 평가가 여전히 있었지만, 합격 가능성 64%, 면접 순위 하위 48%로 훨씬 나아졌다.
이렇게 AI 면접은 합격 가능성과 상대 순위를 정확한 퍼센트로까지 제시하면서 지원자의 자세와 태도를 세세하게 지적할 정도로 발전했다. 정교화된 AI 면접은 취업준비생들에겐 당락을 가를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관문으로 자리잡고 있다. 공정성 확보와 비용 절감 차원에서 기업들은 AI 면접 절차를 빠르게 적용하는 중이다. 통계를 보면 지난해 고용노동부 설문조사에 응한 252개 대형 기업 중 40곳(15.9%)이 AI 면접을 도입했다.
그러다 보니 AI 면접에 딱 가로막혀 꿈을 접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수정(28)씨는 지난해 취업에 성공하기까지 8번이나 AI 면접에서 탈락했다고 한다. 금융권이나 대기업 공채에는 대부분 서류전형 통과 이후 AI 면접 절차가 있었는데, 그 단계를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 이씨는 "AI 면접에서 계속 떨어진 이후, AI 면접 특강도 듣고 취업 커뮤니티나 유튜브에서 'AI 면접 꿀팁' 영상까지 보며 수 없이 연습했다"고 털어놨다. 현재 이씨가 다니는 회사는 채용 절차에서 AI 면접을 보지 않은 곳이었다. 이씨는 "만약 대면 면접이었다면 면접관 반응 등을 통해 떨어진 이유를 가늠해 보기라도 할텐데, AI 면접은 왜 탈락했는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한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구직자들의 이런 답답함을 이용해 AI 면접 강의를 내놓는 사교육 기관도 제법 많다. 한 취업 플랫폼은 'AI 면접 합격기술'이라는 제목으로 유명 강사의 온라인 강의를 제공하고 있다. 또 다른 취업 플랫폼에서도 온·오프라인으로 '인사임원이 알려주는 대기업 AI 면접 잘 보는 팁' 강의를 판매하고 있다. 한 취업 컨설팅업체는 AI 면접 컨설팅 과정을 별도로 개설했다. 컨설팅 과정은 총 4시간으로, 금액은 65만원이라고 한다.
AI 면접관이 어떤 점을 좋게 보는지 그 평가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선 "무조건 조커(영화 다크나이트에 등장하는 입꼬리가 찢어진 캐릭터)처럼 웃어야 한다"는 웃지 못할 면접 요령이 퍼지고 있을 정도다. 올해 상반기 한창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박모(24)씨는 "웃기 힘들면 아예 조커처럼 분장을 하든지, 당황스러운 상황이 있더라도 눈웃음을 '박제'하라는 말들을 취업준비생들끼리 한다"고 전했다. 박씨는 "데이터를 통해 사람을 판단한다지만 과연 예외적인 경우까지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많이 든다"면서 "채용시장에 AI 면접이 확대되는게 과연 맞는 일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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