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판매점(통신사 직영점 및 대리점 등)의 도를 넘는 불법 행위와 꼼수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16일 소비자단체 등에 따르면, 통신 요금제의 복잡한 결합·할인제도를 이용한 교묘한 눈속임은 진화하고 있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을 미끼로 소비자를 농락하는 새로운 수법도 나왔다.
서울에 사는 40대 직장인 A씨는 얼마 전 황당한 일을 겪었다. 몇 년 동안 쓰던 스마트폰이 고장나 삼성전자가 내놓은 갤럭시S23을 사려고 LG유플러스 매장에 갔다. 직원은 처음 A씨의 월 데이터 사용량을 보고 가장 알맞은 요금제를 설계해 주는 듯했다.
대화를 나누던 매장 직원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넷플릭스·웨이브·티빙 등 모든 OTT를 볼 수 있는 상품이 있고, 휴대용 컴퓨터(태블릿PC)도 공짜로 줄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A씨는 "권유하는 상품이 괜찮아 보여 가입했더니 실제 태블릿PC를 받았고, OTT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앱도 깔아줬다"고 전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집으로 돌아와 태블릿PC에 깔린 OTT 앱을 아무리 살펴봐도 로고 자체가 낯설었던 것. 각각 다른 플랫폼인 OTT 콘텐츠를 하나의 앱에서 볼 수 있다는 것도 수상했다. 알고 보니 LG유플러스 매장 직원이 깔아준 앱은 불법 동영상 스트리밍(실시간 재생) 앱인 '누누티비'였다. 누누티비는 OTT플랫폼의 저작권을 심각하게 침해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까지 나서서 접속을 차단하고 있다. 더불어 부산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수사에 나섰고 결국 누누TV 측은 14일 서비스 중단을 알렸다.
통신 대기업이 관리하는 매장이 소비자에게 아무런 설명 없이 불법 동영상 앱을 쓰게 한 황당한 상황. 무엇보다 '모든 OTT 서비스를 볼 수 있고 태블릿PC도 제공되는 상품 자체가 LG유플러스'에는 없었다.
A씨는 "나를 얼마나 쉽게 봤으면 불법 앱을 깔아서 팔았는지 분통이 터졌다"고 털어놓았다. 매장 직원은 항의를 받고서야 잘못을 인정하고 A씨의 가입 상품을 해지했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더 철저하게 매장 직원을 관리하고 교육하겠다"고 답했다.
제휴카드를 이용한 속임수는 새로 등장했다. 과거에는 일부 휴대폰 매장에서 일부러 핸드폰 가격을 정가보다 높게 책정한 뒤 불법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소비자를 속였다. 예를 들어 지급하려는 불법 보조금이 30만 원이라면 70만 원짜리 상품을 100만 원으로 제시한 뒤 30만 원을 깎아 준 것처럼 영업을 한 것.
최근 통신사 및 OTT 플랫폼과 카드사 사이의 제휴가 활발해지면서 제휴카드 할인을 마치 소비자에게 주는 혜택처럼 둔갑시키는 경우가 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 따르면, 일부 휴대폰 판매점에서 제휴카드 할인율만큼 상품 가격을 높인 뒤 특정 카드 사용을 유도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소비자는 실질적으로 할인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반면 휴대폰 판매점은 요금제도 팔고 제휴카드 사용도 늘려주는 일석이조 효과를 거두는 셈이다. 30대 B씨는 "스마트폰을 바꾸면서 결합 상품에 가입하고 제휴카드까지 사용했는데 요금제가 복잡해 내가 제대로 할인 혜택을 적용받는지 확인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휴대폰 성지'로 불리는 판매점들의 불법 보조금 문제도 계속되고 있다. 이들은 온라인이나 문자 메시지를 통해 소비자를 끌어모은 뒤 불법 지원금을 주는 방식으로 영업하고 있다. 실제 기자가 휴대폰 성지 운영자에게 스마트폰 값을 물어보니 삼성전자 갤럭시S23·갤럭시Z4 시리즈와 애플 아이폰14 시리즈 등 100만 원을 훌쩍 넘는 최신 기종을 0원에 판다는 문자가 날아왔다.
심지어 일부 스마트폰 모델은 오히려 돈을 받아갈 수도 있다고 했다. 통신사를 옮기거나 번호를 바꾸면 할인 폭이 커졌는데 일종의 경쟁 통신사 고객 빼내기 수법이다. 이 같은 보조금 지급은 모두 불법 행위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최근 소비자에게 불법 보조금을 지급한 판매점 30곳에 단말기유통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과태료 1억1,000만 원을 부과했다.
시민단체들은 통신업계의 마케팅 경쟁이 과열되면서 일부 휴대폰 판매점들이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통신 품질이나 합리적 가격 경쟁 대신 보조금 경쟁과 소비자 빼내기 대결이 되풀이된다는 설명이다.
김주호 참여연대 사회경제1팀장은 "휴대폰 유통 구조를 투명하게 바꿔야 한다"며 "현재 대부분 통신 요금제는 통신비에 스마트폰 기기 값을 합쳐서 팔고 있는데 이를 분리해서 표시하는 분리 공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불법 보조금이나 제휴카드 보조금 지급을 위해 상품 가격을 일부러 올리는 행위를 소비자가 더 쉽게 알 수 있다는 설명이다.
통신 대기업들의 책임도 강조했다. 그는 "휴대폰 판매점들은 이동통신사들로부터 통신 서비스 판매에 대한 수수료를 먹고사는 구조"라며 "통신사들은 휴대폰 판매점에서 벌어지는 마케팅 경쟁과 이로 인한 불법 행위에 제대로 책임을 지고 재발 방지책까지 적극 관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