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이기는 때로 흉기로 돌변한다. 기술진보로 얻은 안락함은 생존의 울타리가 무너지는 결말을 불러오기도 한다.
신간 '일인분의 안락함'은 에어컨과 냉매에 대해 파고들며 인류가 무모하게 물질적 편안함을 수용하면서 치르는 환경 파괴와 인종·계급 차별 문제를 다룬다.
에어컨은 인류를 더위로부터 구원했지만 대가는 혹독했다. 저자는 냉매가스 염화불화탄소(CFC)를 사용한 에어컨이 최고 발명품으로 여겨졌던 1920년대부터 CFC를 금지한 1987년 몬트리올의정서 채택까지를 돌아본다. 그러면서 인류가 에어컨의 편리함을 취하면서 치르게 된 지구 파괴의 대가를 꼬집는다.
저자는 냉매가 조장한 '삶의 억압'에 주목한다. 에어컨으로 실내 온도를 통제함으로써 인류는 더 오랜 시간 일하게 됐다. 불편함은 구식으로, 참고 견디는 것은 진보 흐름을 역행하는 행위로 인식되면서 부유층부터 에어컨의 안락함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날로 더해가는 기후의 혹독함은 가난한 국가와 공동체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
저자가 에어컨을 버리고 '냉매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펴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 편안함에 대한 욕망을 조장하는 정치·경제·문화적 구조를 바꾸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공공 냉방'에 대한 접근성 강화 등 환경정의 구현을 위한 방법을 고민하자고 제안한다. 저자는 핵무기 대학살이나 지진, 화산이 아닌 스프레이나 에어컨, 냉장고 사용 등 개인적 안락함을 누리는 평범한 일상이 지구상 생명체를 대대적 파멸로 이끌 것이라고 강조한다. 철학과 과학, 문학을 넘나드는 자연스럽고 유려한 글쓰기 덕분에 이 같은 주장이 과장되게 느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