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에 신임 지도부가 들어선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총선을 1년 앞둔 여당의 신임 지도부. 정상적인 경우라면 당의 비전을 제시하고 조직을 정비하며 거침없는 행보를 계속하고 있을 때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들의 행보 중 기억에 남는 건 각종 말들이 낳은 화(禍)밖에 없다. 5·18 망언으로 임기 시작부터 논란이 된 김재원 최고위원부터 "제주 4·3은 김일성의 지시였다"는 태영호 최고위원, 그리고 쌀 소비 감소를 '밥 한 공기 비우기 운동'으로 해결하자는 조수진 최고위원까지. 어쩜 이렇게 주옥같은 인물들로만 지도부를 구성했는지 일면식 없는 김기현 대표에게 측은지심이 생길 정도다.
이 처참한 설화들을 국민의힘 지도부의 자질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1차적 책임이야 무능하고 못난 정치인 개인에게 있겠지만 사람이 바뀐다고 해결될 일이라 보지는 않는다. 정책대결보다 말싸움이 주목받는 환경이 이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좋은 정책을 제안해서 성공한 정치인이 있는가? 아니, 그전에 언론사들은 그런 정치인을 비중 있게 다뤄주고, 독자들은 그런 뉴스를 소비하고자 하는가? 절대 아니다. 장사꾼이 장사 잘되는 길을 택하듯이 정치꾼은 정치를 계속할 수 있는 길을 택한다. 그런 점에서 국힘 지도부가 낳은 설화는 한국 정치의 구조적 병폐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원내 정당들은 아침마다 최고위원회의나 원내대책회의 등 각종 지도부 회의를 연다. 이 회의에서 할 말을 준비하는 데에는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메시지를 준비하는 당직자나 보좌진도 마찬가지다. 뉴스가 쏟아지는 대로 신문 사설이나 칼럼을 참고하고, 종편이나 유튜브에서 유력 스피커들이 말하는 논리를 차용하기도 한다. 시사 프로그램을 준비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온갖 사실관계를 일일이 따지고 당의 기조에도 맞추어 가며 논리를 개발하는 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를. 그렇게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소식들을 쫓다 보면 하루가 다 간다. 하지만 거기서 다뤄지는 논쟁이란 대개 국민 복리와 무관하거나 소모적 논쟁인 경우가 많다. 비방, 모욕, 저주 등 날 선 표현들이 상대방을 향하고 또 그런 뉴스들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이런 환경 속에선 지도부 구성원들이 정책을 연구할 시간이 없다. 그러니 쌀 소비 감소를 극복하기 위해 밥 한 공기를 다 비우자는 제안이 나온다. 조수진 의원은 이게 "회의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언론이 왜곡"했다고 했지만, 아이디어 차원으로 보기에도 수준 낮은 발상이기에 유권자들이 경악한 거라는 걸 본인만 모른다.
아침마다 회의를 열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당헌상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최고위원회의를 일주일에 한 번만 열어도 된다. 그럼에도 여야 지도부가 매일같이 회의를 여는 건 언론에 한 번이라도 더 노출되기 위함일 것이다. 기사에 많이 나려면 천박한 이슈를 자극적으로 말해야 한다. 재미없는 정책 이슈가 뒷전으로 밀리는 건 당연한 결과다.
정치권에서 슬슬 정치개혁 이슈가 대두되고 있다. 선거제도 개편, 의원 정수 축소 등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정작 자기 정치에 지장 생길 이야기들은 하지 않는다. 다른 무엇보다 정치인이 자극적인 말로 이슈를 만들고 인지도를 높이는 지금의 정치 환경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 최근 국힘 지도부가 보여준 논란은 입으로 하는 정치가 그 한계에 봉착했음을 시사한다. 한국갤럽이 4월 첫째 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이 33%, 국힘이 32%의 지지를 받는 걸로 나타났다. 그런데 무당층 비율이 이들과 비슷한 28%에 달했다. 특히 20대(51%)와 30대(35%)에서 그 비율이 높았다. 이들을 잡는 집단이 총선에서 이길 거란 건 분명하다. 결국은 말이 아닌 정책과 실천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