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 외교부 장관이 12일 미국 정부의 대통령실 도·감청 의혹과 관련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미 측에 합당한 조치 요구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온라인상에 떠도는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 간 대화 내용의 진위 여부에 대해선 “제가 직접 확인하진 않았고 대통령실에서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외교부로 복귀한 이 전 비서관의 국회 출석을 요구했지만 이 전 비서관은 휴가를 내고 응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 장관은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도·감청 논란과 관련해 미국에 항의할 의사가 있느냐’는 김홍걸 무소속 의원 질의에 “사실 확인이 이뤄지고 한미 간에 결과가 공유되면 미 측에 합당한 조치를 요구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현재까지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어떤 조치를 취했느냐’는 우상호 민주당 의원 질문에는 “외교채널을 통해 이것이 어떻게 일어난 사건이고 확인된 사실이 무엇인지 공유해달라고 말했다”고 답했다.
이날 외통위에서 야당 의원들은 “미국이 악의를 갖고 (도·감청을) 했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의 발언 등을 거론하며 정부의 ‘저자세 외교’를 집중 질타했다. 김홍걸 의원은 “가해자 변호에 급급한 게 윤석열 정부가 강조한 ‘글로벌 중추국가’ 외교냐”며 “10년 전 미국 정부가 독일을 도청한 게 논란이 됐을 때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용납할 수 없다'며 주미대사를 소환하고 미국 정부에 직접 항의했다”고 비판했다. 이재정 민주당 의원도 “브라질 같은 경우 2013년 도·감청 논란에 미국 국빈방문을 취소한 사례도 있다”며 정부의 소극적 대응을 꼬집었다.
정부의 안일한 대응에 대한 지적은 여당에서도 나왔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금 미국의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대통령실은 불법 감청은 터무니없는 거짓 의혹이라고 확정적으로 말을 하는 등 성급한 판단을 했다”며 “우리 스스로 미국이 안 했다고 실드 칠(감쌀)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여야는 최근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 전 비서관의 회의 출석 문제를 놓고 공방을 벌였다. 이재정 의원은 “정확한 사실 확인을 위해 이 전 비서관에게 관련 보고를 요구했고 비공개도 가능하다고 했는데 이 전 비서관이 오늘 오후 반차를 썼다”며 “주요 증인을 누군가 빼돌린 것 아니냐”고 거듭 출석을 요구했다. 이에 김석기 국민의힘 의원은 “대통령실에서 명확한 입장을 발표했는데 의혹만 가지고 관계자 출석을 요구하고 있다”고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