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해주는 기준을 대폭 완화하고 나섰다. 도로나 항만 등을 건설할 때 총사업비 1,000억 원까지는 사업성 검증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나라 곳간 걱정이 날로 커지는 이 시국에 국민 혈세를 제멋대로 쓰도록 하겠다는 건데, 이게 타당한 일인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어제 경제재정소위에서 SOC와 연구개발(R&D) 사업의 예타 대상 기준 금액을 두 배가량 상향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총사업비 기준은 500억 원에서 1,000억 원 이상으로, 국비 지원 기준은 300억 원에서 500억 원 이상으로 각각 조정했다. 이 금액에 못 미치면 예타를 받지 않아도 된다. 여야가 지난해 말 개정안에 잠정 합의한 상태라 본회의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될 전망이다.
예타 기준이 바뀌는 건 관련 제도가 도입된 1999년 이후 24년 만이다. 물가 상승을 감안한 조치라는데 왜 하필 재정악화 우려가 커진 지금 서두르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코로나19로 지출이 늘어 지난해 국가채무는 사상 처음 1,000조 원을 돌파했고, 경기 둔화로 올해 1~2월 국세 수입 감소폭(15조7,000억 원)은 역대 최대였다. 총선을 1년 앞두고 지역구 후보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 아닌가.
사사건건 대립하는 여야가 퍼주기에만 초당적으로 손을 잡는 건 볼썽사납다. 기존 공항도 문 닫을 판에 20조 원의 사업비가 투입되는 대구경북신공항과 광주군공항에 예타를 면제해주는 특별법을 서로 주고받았다. 대학생의 ‘1,000원 아침밥’을 두고는 원조 논쟁까지 하며 서로 더 퍼주겠다고 경쟁한다.
특히 국민의힘에 묻고 싶다. 재정 건전성을 그렇게 강조하면서 예타 면제 확대는 괜찮은 건가. 재정준칙 법안과 연계하겠다면서 그보다 먼저 밀어붙여야 할 시급성이 있는가. 이대로면 내년 총선에서 도로를 만들고 다리를 짓겠다는 퍼주기 공약이 난무할 것이 자명하다. 여야 모두 반성하고, 이제라도 입법을 멈추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