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기준금리를 2회 연속 동결했다. 여전히 "자동차를 세우고 물가를 둘러싼 '안개(불확실성)'를 예의주시할 때"(2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라는 판단이다.
11일 한은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3.5%로 유지했다. 금통위는 통화정책방향 결정문(통방문)에서 "물가 상승률의 둔화가 이어지겠지만 주요국 금융 부문의 리스크가 증대되는 등 정책 여건의 불확실성이 높다"며 "여타 불확실성 요인의 전개 상황을 점검하면서 추가 인상 필요성을 판단하는 게 적절하다"고 설명했다. 올해 첫 만장일치 결정이다.
한은은 상반기 물가 경로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걷혔을지 몰라도, 하반기에는 안개가 자욱하다고 했다. 상반기에는 국제유가의 기저효과로 '2분기 3%대 진입'이라는 전망이 맞아떨어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반면 하반기에는 국제유가와 공공요금(전기·가스)의 불확실성이 크다. 최근 산유국들이 '깜짝' 감산을 결정했고, 우리 정부는 2분기 공공요금 결정을 유보했기 때문이다.
에너지·식료품을 제외한 근원 물가가 생각보다 '끈적'한 것도 고민거리다. 이창용 총재는 "공공요금 인상의 2차 파급 효과와 더불어, 대면활동 증가로 서비스물가가 더디게 떨어지고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근원 물가 전망을 기존(3%)보다 높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은행 위기로 전 세계의 경기 둔화 우려가 커졌고, 그에 따라 미국 등 주요국의 통화정책을 가늠하기 어려워졌다는 건 한은이 직면한 '새로운 안개'다. 이 총재는 "1월만 해도 미국과 유럽의 경제성장률이 예상보다 좋지 않겠나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이 갑자기 찬물을 끼얹었다"고 비유했다. 그는 우리나라 역시 "정보기술(IT) 경기 부진 심화까지 겹쳐, 앞선 성장률 전망(1.6%)을 소폭 밑돌 것"으로 전망했다.
경기 둔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SVB 사태 이후 "연내 금리 인하"를 기대하는 시장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지만, 이 총재는 이날 단호하게 잘랐다. 1월 금통위에서 시장의 의견일 뿐이라며 포용했던 것과는 상반되는 태도였다. 물가 불확실성이 큰 만큼 매파 발언으로 시장의 경각심을 깨우려는 의도다.
국고채 등 시장금리는 금리 인하 가능성을 반영해 이미 기준금리보다 낮은 3.2% 안팎으로 떨어진 상태다. 이 총재가 특히 문제 삼는 건 91일의 단기금리다. 이날 오전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는 전날보다 0.02%포인트 낮은 3.49%로 떨어졌다.
이 총재는 시장의 기대는 기준금리의 키를 쥐고 있는 금통위원들의 생각과 배치된다며 "과도한 기대"라고 일축했다. 이번 회의에서도 금통위원 6명 중 5명이 "기준금리가 3.75%로 인상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금통위원 몇 분은 시장의 기대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워닝(warning·경고)'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했다"고 쐐기를 박았다.
시장과 중앙은행의 금리 전망이 크게 엇갈리는 것처럼 "SVB 사태 이후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이 맞부딪힐 가능성이 커졌다"는 게 이 총재의 평가다. 이어 "각각에 대응할 다양한 '툴(도구)'을 마련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덧붙였다. 이날 금통위가 유동성 공급을 위해 대출 담보 확대 조치를 3개월 더 연장한 것도 금융 안정의 툴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한은 총재의 경고에도 시장은 2연속 금리동결을 금리 인하의 포문을 여는 호재로 인식했다. 이날 금리동결 발표 이후 외국인과 기관 매수세가 대량 유입되며 코스피는 전장보다 1.42% 오른 2,547.86에 마감했다. 2022년 6월 10일(종가 2,595.87) 이후 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