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범죄자를 엄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겠다며 마련한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지 18개월이 다 됐지만, 수사 현장에선 여전히 '구멍투성이' 법안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법 시행 이후에도 스토킹 관련 강력범죄는 줄어들 기미가 없는 상황에서, 모호한 법 적용 기준 탓에 경범죄에도 스토킹 혐의를 적용할 수밖에 없는 등 수사력을 낭비하고 있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온다.
10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 시행된 2021년 10월 21일 이후 올해 2월 말까지 검찰은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총 4,117명을 재판에 넘겼다. 이 중에는 △인격살인(관련기사 ☞[단독] '우체통을 찾아라' 26개월 스토킹 피해자 극단 선택 "죽어서라도 벗어나고 싶어") △교제살인 △신당역 살인 등 스토킹에서 비롯된 각종 강력범죄가 다수 포함돼 있다.
문제는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협박 혐의로 적용할 수 없는 경범죄에 대해서도 스토킹처벌법이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 관계자는 "협박은 상대방에게 명백한 해악을 고지해야 적용할 수 있는 반면, 스토킹 혐의는 지속적·반복적 행위를 통해 피해자에게 불안감을 유발시켰다는 점만 입증하면 된다"고 지적했다. 스토킹처벌법 위반에 해당하는 범주가 지나치게 넓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검찰의 '스토킹처벌법 기소 현황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검찰이 법 시행 이후 기소한 4,117명 가운데, 구속 기소한 피의자 비율은 8.1%(335명)에 불과했다. 오히려 불구속 기소와 구약식 기소가 각각 37%(1,525명), 54.9%(2,257명)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지방검찰청의 한 차장검사는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라는 이름으로 강력범죄와 경범죄가 혼재되 송치되다 보니, 오히려 중대 사건을 구별하는 데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당초 입법 목적은 위중한 스토킹 범죄 혐의 적용에서 출발했는데, 여러 경범죄까지 포함돼 '종합선물세트' 수준이 됐다는 것이다.
경찰에선 수사력이 분산되면서 생명의 위험을 느낄 수 있는 '스토킹 강력범죄' 대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는다. 실제로 이웃 간 '층간소음' 문제까지 스토킹 범죄로 고소·고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래층 거주자가 위층을 지속적으로 찾아가면 위층 주민에겐 스토킹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층간소음 갈등이 살인까지 부를 수 있지만, 형사소송보다는 민사소송으로 해결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형사적으로 문제 삼으려는 경향이 생겼다"고 말했다.
수사기관에서 힘들게 재판에 넘기더라도 혐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 대전지법 형사8단독 차주희 부장판사는 지난해 5월 12일 층간소음 등으로 인한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차 부장판사는 "피고인의 행위는 지속적·반복적 스토킹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법조계에선 법을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성범죄 전문가인 이은의 변호사는 "현행 스토킹처벌법이 각종 괴롭힘 행위에 대해 모두 아우르는 법처럼 쓰이고 있다"며 "스토킹처벌법 개정뿐 아니라, '교제살인' '스토킹 보복 범죄' 같은 강력범죄에 대해선 '데이트 폭력 처벌법'을 따로 발의해 적용하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회도 현행법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33개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모두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