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보당국이 한국 정부에 대한 감청을 벌였다는 의혹은 이르면 5월 열리는 한미 정보당국 간 협의의 의제로 오를 전망이다.
10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김규현 국가정보원장이 이르면 오는 5월 미국 애브릴 헤인스 국가정보국(DNI) 국장과 회동할 예정이다. 한미일 정보당국 수장은 당초 지난 3월 회동하기로 했다가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 발표로 3국 관계에 주요 변화가 생기면서 일정을 재조율했다.
정부 관계자는 뉴욕타임스(NYT)에서 보도된 미 국가안보국(NSA)과 국가정보국(CIA)의 국가안보실 감청 의혹이 "정보수장 회동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해당 문건의 사실관계와 유추 경위, 향후 대응에 대한 종합적인 논의와 의견교환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현재 정보당국은 유출된 문건이 조작됐거나 특정 세력의 공작일 가능성을 열어두고 미측의 조사 결과를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의 도· 감청 의혹에 대한 한미 간 협의내용은 대부분 비공개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국가정보연구회 사무총장인 장석광 동국대학교 교수는 "도·감청에 대한 국가적 대응은 공개적으로 논의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전 세계 어느 나라도 도·감청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논의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 2013년 미 CIA 계약요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NSA의 도·감청 실태를 폭로했을 당시 청와대도 감청을 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한미 양국 간 협의와 후속 대응은 공개되지 않았다.
현재 한미 간에는 상당한 수준으로 정보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미 NSA는 한국군의 신호정보부대인 777사령부가 특수정보(SI)를 수집할 때 감청 장비를 지원하는 등 협력하는 관계다. 다만 NSA는 우리 군에조차 공유하지 않는 장비와 구역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함께 미 정보당국은 최근 구속된 창원간첩단의 해외 움직임을 우리 방첩당국이 파악하는 데도 협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스노든의 폭로 당시만 해도 NSA는 120여 개의 첩보 위성을 사용한 통신망 '에셜론(Echelon)'과 인터넷 방첩망 '프리즘(Prism)'을 운영하고 있었다.
정보 전문가들은 미국 정보당국의 한국 정부 감청 의혹이 양국 간 정보 교류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정보수장 협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정보세계에서 외교적 항의는 통하지 않는다"며 "정보를 우리에게 유리하게 활용·수집할 수 있는 방향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10년 전에도 정보역량이 약한 한국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며 "방첩차단 기술개발에 적극 투자하면서 외교를 통해 정보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