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게도 한 시공간에서 이뤄지는 쌍방 간의 대화입니다. 어떠한 맥락도 흐름도 없이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이 장면은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속 가해자들의 자기중심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를 '집단적 독백'이라 합니다. 독백은 흔히 연극이나 영화 속 인물이 외따로 놓인 상황에서 혼잣말을 하는 일이죠. 집단적 독백은 한자리에 모인 여러 인물이 대화의 맥락 없이 혼잣말만 늘어놓는 경우입니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질문하고 공감하는 대화와 소통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만을 늘어놓는 게 특징입니다.
집단적 독백은 스위스의 발달심리학자 장 피아제가 처음 제시한 개념인데요. 피아제는 인지발달이론을 통해 자기중심적 언어에 대한 논의를 처음 시작한 학자입니다.
심리학계에서 말하는 자기중심성이란 자기와 자기를 둘러싼 바깥세상을 구분할 줄 모르는 상태인데요. 자아를 타인과 구별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자신의 생각과 감정만으로 이해하려 합니다. '더 글로리' 속 가해자들인 박연진과 전재준은 자기중심성이 과도한 인물인 셈이죠.
피아제는 '세 산 실험'을 통해 이를 증명했습니다. 세 개의 각기 다른 모양의 커다란 산 모형을 두고, 다른 위치에서 타인이 보게 될 산의 모양을 예상하도록 하는 실험인데요. 유아기의 아동들은 타인이 자기가 보는 산의 모양과 다른 장면을 본다는 사실을 모르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보였습니다. 이는 대략 8세 이상이 되면 조금씩 해소되면서 타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보통 2~6세 유아들에게서 보이는 자기중심적 대화 습관은 종종 성인들 중에서도 발견되는데요.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는 능력이나 공감적 인지 능력, 또는 상호작용적 대화 습관이 제대로 발달되지 않은 경우 성인기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적절한 정서적 교류나 사회적 관계 형성의 부족으로 대인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죠.
특히나 기술의 발달로 그룹 채팅방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이런 집단적 독백을 자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의식의 흐름', '아무 말 대잔치',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면 돼)'도 자기중심적인 언어 행태를 나타내는 표현인 셈입니다.
※ 참고 자료
-전영미, 송현주. 만 3세 한국 아동들의 타인 조망 수용 능력과 새로운 단어 학습. 20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