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이미 뚜렷하게 그 목적이 무엇인지가 공론화된 정상회담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에 워싱턴에 가서 반도체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와야 한다.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을 멋들어지게 해도 반도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온다면 미국 방문 성과가 색이 바랠 수밖에 없다. 반도체 하나만 해결하고 와도 이번 정상회담은 성공이다.
정상회담을 양국 간 최고지도자 간의 외교적인 거래로 본다면, 한국은 이미 미국에 큰 선물을 주었다. 한국 국내 정치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대승적 관점에서 일본과의 데탕트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했다. 이번 일본에 대한 조치의 주요 오디언스는 사실 미국이었다. 워싱턴이 바라던 미국 동북아 전략의 약한 고리를 다시 채운 것이다. 이제 미국이 한국에 선물을 줘야 할 차례다.
한국은 미국 반도체 산업 재건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국가이지만, 미국의 투자에는 상당한 리스크가 따른다. 미국은 상생의 자세를 보여주고, 한미 동맹 구호 "같이 갑시다"를 실천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한미가 동맹으로서 반도체 협력을 더 잘 조율하기 위해선 아래 원칙을 미국에 제시할 수 있다. 첫째, 미국은 반도체 지원법의 조건을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 기업이 이미 미국에 투자를 시작한 상황인데, 매번 미국에서 새로운 세부 사항과 조건이 더해지면 혼란을 야기한다.
둘째, '한미 반도체 파트너십 대화'(Korea-U.S. Semiconductor Partnership Dialogue)를 더욱 실질적으로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의사소통을 강화하고 기업 비밀을 보호하며 향후 반도체 협력 기반 마련을 탐색할 수 있다. 동맹과 조율된 의견이 법안에 반영돼 나오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은 일방적인 발표로 매번 동맹을 놀라게 해서는 안 된다.
셋째, 중국 '가드레일' 조항 우려에 집중하는 것 못지않게 시야를 넓혀 한미가 중국 이외에 글로벌 차원에서 반도체 협력 파이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위기 속에서 기회를 궁리하는 것도 필요하다.
넷째, 한미 동맹 70주년이고 12년 만의 대통령 국빈 방문이다. 미국은 한미가 함께 도전에 대처하는 것뿐만 아니라 함께 번영하는 비전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동맹국들이 기꺼이 미국의 정책에 동참할 것이다.
향후 미중 갈등은 더욱 강도가 높아질 것이고 그 범위는 더욱 넓어질 것이다. 미국이 중국을 얼마나 더 억제할 것인가에 대해, '반도체 전쟁' 저자인 크리스 밀러 교수는 필자에게 '필요한 만큼'(if necessary) 추가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더 조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결의는 확실하다.
그런 측면에서, 반도체 다음으로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규제를 강화할 영역을 이번에 정상 차원에서 확인해야 한다. 미국 정책 커뮤니티에서는 그것이 '바이오' 영역이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지만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한미 간의 사전 소통을 통해 실무 대응팀을 선제적으로 가동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미국이 내놓는 조치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는 패턴을 막을 수 있다.
지난해 5월 바이든 대통령 방한 시 윤석열 대통령은 "반도체가 한미 동맹의 핵심이다"고 했다. 이번 방미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이에 화답할 차례다. 이번 회담의 성공으로 '윤석열=반도체 입국'이라는 키워드로 역사에 남아야 한다. 그만큼 중요한 회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