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곳에서 예쁘게 빛나길"…만취 운전자 초등생 희생 사고 현장 추모 물결

입력
2023.04.10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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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꽃·손편지·인형 등 수북
다친 학생들 쾌유 비는 편지도
법원 "도주 우려" 가해자 영장 발부

"언니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지 못해 미안해. 미래를 앗아간 나쁜 어른이 꼭 벌 받도록 할게."

지난 8일 오후 대전 서구 둔산동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내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진 배승아(9)양 추모 발길이 사고 현장에 이어지고 있다. 10일 오전 사고가 발생한 둔산동 탄방중학교 옆 인도에는 하얀 국화꽃과 손편지, 과자, 인형, 각종 음료수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사고 현장 인근의 한밭초등학교 5학년 최서준군은 "다친 친구들 잘 낫고, 꼭 다시 학교생활하길 바란다. 하늘나라에 간 친구도 꼭 행복해야 해"라며 숨진 배양의 행복과 다친 초등학생들의 쾌유를 빌었다. 이날 현장에 놓인 편지에는 "언니들이 음주운전 없는 세상을 만들게" , "거기서는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지내", "승아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등의 글이 적혀 있었다. "음주운전을 한 사람을 15년 뒤에 꼭 처벌해 줄게"라는 글도 눈에 띄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사고 현장을 찾은 김은숙(48)씨는 "아직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한 사람으로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게 너무 안타깝고 믿기지 않는다"며 "얼마나 더 아이들이 희생돼야 하느냐"며 눈물을 훔쳤다. 인근을 지나던 한 주민은 "도로에 중앙분리대만 있었어도 차가 반대편까지 넘어가진 않았을 텐데"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장우 대전시장은 이날 오후 사고 현장을 찾아 배양의 넋을 기린 뒤 "어린이 교통사고 예방대책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이원석 검찰총장도 11일 오후 대전현충원에 들른 뒤 사고 현장에 가서 숨진 배양을 추모할 예정이다.

대전지법은 이날 "도주 우려가 있다"며 가해 차량 운전자 방모(65)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전직 공무원으로 5년전 퇴직한 것으로 알려진 방씨는 앞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대전둔산경찰서를 나서면서 "브레이크를 밟으려다 그런 것 같다. 숨진 학생과 유가족에게 정말 죄송하다"고 밝혔다.

방씨는 지난 8일 오후 2시 21분쯤 탄방중 인근 교차로에서 만취 상태로 차를 운전하다 스쿨존으로 돌진해 길을 가던 배양을 숨지게 하고, 함께 있던 어린이 3명을 다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이 목격자 신고를 받고 출동한 현장에서 방씨를 검거한 뒤 음주측정을 한 결과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 수준인 0.108%로 나왔다. 경찰은 현장 폐쇄회로(CC)TV 영상을 분석하고, 방씨와 현장 목격자들을 상대로 자세한 사고 경위를 조사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사고 전 방씨와 함께 술을 마신 동석자 등도 불러 음주운전 방조 여부에 대해 조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대전= 최두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