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보고서 잘못 썼다고 기소? 경찰들이 억울함 호소한 이유는

입력
2023.04.10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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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마사지 업소 신고에 출동한 경찰
업주 거짓말에 불법 안마사 발견 못해
경찰, 관행대로 업소 '미단속 보고서' 작성
검찰은 "허위 보고서 작성" 판단해 기소
동료 경찰 6,500명 탄원서… 2심서 무죄

편집자주

끝난 것 같지만 끝나지 않은 사건이 있습니다. 한국일보 기자들이 사건의 이면과 뒷얘기를 '사건 플러스'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일하지 말라는 거죠. 풍속업소 미단속 보고서는 ‘경찰 내부용 정보보고’입니다. 수사에 도움이 되라고 남기는 보고서가 잘못됐다고 기소하면, 앞으로 누가 보고서를 쓰겠습니까.”

현직 경찰관 6,500여 명이 재판부에 탄원서를 내는 등 검찰 기소에 조직적으로 반발하는 일이 벌어졌다. 경찰 내부망에는 “저런 식으로 기소하면 살아남을 공무원이 몇이나 되냐” “현장을 하나도 모르는 검찰의 탁상공론식 기소”라는 글까지 올라왔다. 도대체 경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불법 마사지 업소 신고에 출동한 경찰, 거짓말한 업주

2020년 2월 21일 오후 1시 34분, 경기 분당경찰서 소속 한 파출소에 112 신고 문자가 들어왔다. 마사지업소에 취업비자가 없는 태국 여성들이 불법 마사지를 하고 있다는 신고였다. 신고자는 “점주가 가게 안에서 폐쇄회로(CC)TV로 보고 있다가 경찰이 출동하면 문을 잠근다. 방금 손님을 받는 것을 봐서 신고한다”고 말했다.

박모 경사와 윤모 경장은 10분 뒤 신고 현장에 도착했다. 이들이 1차 수색한 현장은 신고 내용과는 달랐다. 문이 열려 있어 내부 출입이 자유로웠고, 남성 두 명이 평상복을 입고 있을 뿐이었다. 업주는 “이미 불법 마사지 행위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어 너무 힘들다”며 “지금 손님과 면접 보러 온 사람이 있어 불편해하니 나가서 얘기하자”고 애원했다. 현행법상 무자격 안마사의 행위를 현장에서 적발하지 않는 이상, 영장 없는 강제 수색은 불가능하다. 경찰은 이에 5분간 문밖에서 업주와 얘기를 나눴고, 업주는 손님과 면접자를 귀가시켰다.

경찰은 이후 다시 현장을 수색했으나 불법 마사지사는 없었다. 신고인은 재차 “업장 내 관리사가 있다”는 112 문자를 보냈다. 경찰은 신고인이 안에 있는 손님이라고 생각해, 좀더 자세히 진술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경찰은 이후 112종합정보시스템 '종결사항'에 신고와 같은 불법 마사지 관리사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적었고, 풍속업무 관리시스템의 '미단속 보고서'에는 업소 출동 당시 업주와 면접을 보러 온 남성 1명이 현장에 있었다고 적었다.

검찰 "현장 대응 은폐하려고 경찰 시스템에 허위 내용 입력"

문제는 신고인이 당시 출동했던 경찰을 직무유기로 고발하면서 불거졌다. 출동했던 경찰이 업주와 함께 밖에 나간 사이, 문 뒤에 숨어있던 태국인 안마사가 뒷문으로 도망쳤다는 것이다. 경찰은 현장에 출동했던 박 경사 등의 대처가 미흡했다고 보고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업주 진술을 토대로, 박 경사 등을 공전자기록 위작 등 혐의로 기소했다. 박 경사 등이 불법 안마업소를 인지하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이를 은폐하려고 경찰시스템에 허위 내용을 입력했다는 것이다. 1심 법원은 검찰 주장을 받아들여 박 경사와 윤 경장에게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형량이 그대로 확정되면 두 사람은 경찰 제복을 벗어야 했다.

유일한 증거는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이 마사지 관리사를 내보내라 했다”는 업주 진술 뿐이었다. 업주 진술은 그러나 법정에서 번복됐다. 경찰 측을 변호했던 신상진 지음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업주가 독자적으로 마사지 관리사를 빼돌렸다고 인정할 경우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로 수사 받거나, 불법 마사지 관리사 고용이 문제가 될 수 있어 경찰 비리처럼 몰아가려 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1심 판결 후 열린 징계위원회에서 박 경사 등에 대한 징계 조치를 보류했다. 업주와의 유착 관계를 확인하지 못했고, 사건 역시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경찰 "이런 식으로 기소되면 누가 보고서 쓰나"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경찰들은 집단 반발했다. 해당 사건은 ‘봐주기 단속’이 아니라 업주의 거짓말로 인한 단속 실패에 가깝기 때문에, 미단속 보고서 기재 내용을 문제 삼아 기소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미단속 보고서는 신고를 받고 현장 출동한 경찰이 단속하지 않았을 경우, 그 사유와 현장 상황을 기록한 문서다. 법령상 근거나 기재 관련 규정은 따로 없으며, 후속 수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내부 보고서다. 보고서에 수 차례 기재된 업소는 이후 수사 대상이 된다.

경찰들 바람대로 지난 7일 항소심에선 “위작의 고의가 없고, 수사 업무를 방해하려는 목적도 없다”며 출동 경찰관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민관기 전국경찰직장협의회 회장은 “보고서에 오류가 있다고 옷을 벗겨버리면 현장 경찰들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이런 식으로 기소되면, 경찰 입장에선 작성 근거도 없고 의무도 없는 보고서를 썼다가 기소될 위험만 증가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조소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