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 발등 찍는 변호사 더 이상 없게 중징계를

입력
2023.04.0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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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피해학생 유족이 7년간 이어온 소송을 재판에 불출석해 취하되게 만든 권경애 변호사에 대한 공분이 가시지 않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권 변호사를 조사위원회에 회부하기로 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직업윤리와 성실의무를 저버린 변호사 사례들이 속속 알려지고 있다. 대한변협이 엄중하게 징계하고 배상 책임을 물어 변호사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도록 자정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학폭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등진 박모양의 어머니는 권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해 학교와 가해학생 측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에서 일부 승소 후 항소했는데, 권 변호사가 3차례 항소심 변론기일에 모두 출석하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에 불복한 가해자 측 항소를 받아들여 박양 어머니의 청구를 기각(원고 패소)했다. 재판에 안 간 이유가 “아파서, 날짜를 잘못 적어서”라고 했다니, 딸의 억울함을 풀어주려고 지난한 시간을 버텨온 어머니의 심정을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결국 권 변호사의 해태 때문에 가해자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못하게 됐다. 변협의 징계가 솜방망이에 그쳐선 안 되는 이유다.

어제 본보가 보도한 ‘불량 변호사’ 사례들은 이번 일이 단순히 변호사 한 명의 일탈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어떤 의뢰인은 재판 진행 상황을 알려주지 않은 변호사 때문에 항소할 기회를 놓쳤고, 변호사 조언이 잘못된 탓에 의뢰인이 형사처벌까지 받은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고도의 공공성과 책임감을 갖춰야 할 법조인으로서 자격을 의심케 하기 충분하다. 이래 놓고 소비자들이 원하는 변호사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온라인 플랫폼을 똘똘 뭉쳐 주저앉혔냐는 비판 역시 피하기 힘들다.

법 지식과 재판 경험이 부족한 의뢰인은 변호사에게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다. 청소 노동자로 일하며 10여 명의 가해자를 상대해야 했던 박양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힘없는 의뢰인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업계가 자정 노력에도 힘쓸 것을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