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한 공소장이 공개됐다. 적시된 34개 혐의는 모두 ‘사업 기록 위조’와 관련됐으며, 관심의 초점이었던 선거법 위반은 없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혼외 성관계를 폭로하려던 전직 배우에게 변호사가 일단 개인 자금으로 지급한 입막음 용도의 돈을 변제하는 과정에서 이를 기업 장부에 ‘법률 비용’이라고 적은 것만 범죄 사실로 적시된 것이다.
그러나 뉴욕 맨해튼지검은 ‘유권자에 대한 사기’의 의도가 있다고 보고, 위조 혐의를 중범죄로 키우는 강수를 뒀다. 사실상 ‘선거법 위반’의 책임도 간접적으로 묻겠다는 목적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 적용된 법 조항은 뉴욕 형법 175조(사업 기록 위조)다. 34건의 혐의 모두 이를 위반했다는 것이며, 모두 단일한 사건과 관련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문제가 된 사건은 이렇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화당 후보로 나서 대통령 선거를 목전에 둔 2016년 10월 말, 당시만 해도 그의 충복이었던 변호사 마이클 코언은 전직 포르노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에게 “2006년 트럼프 전 대통령과 가진 성관계를 발설하지 말아 달라”며 그 대가로 13만 달러(약 1억7,000만 원)를 건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가족기업을 통해 코언에게 13만 달러를 변제하고, 이를 ‘법률자문비용’으로 처리했다. 법률 서비스가 없었는데도 허위 기재한 것이다.
공소장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해당 변제액을 ①‘개인 변호사 법률자문비용’으로 장부에 기재했다. 그리고는 이에 대한 ②허위 영수증을 보관한 뒤 ③트럼프 신탁 계정의 수표를 발행했다. 이러한 3단계 작업은 2017년 2월 14일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총 11차례 이어졌다.
뉴욕 검찰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반복적 위조에 범죄 은폐 의도가 깔려 있다고 봤다. 유권자들에게 불륜 사실을 숨기기 위해 대니얼스에게 ‘입막음 돈’을 지급한 건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며, 이를 감추려는 목적에서 변제액 명목을 장부에 ‘법률자문비용’으로 기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거법 위반’ 기소는 뉴욕 검찰의 권한 밖이다. 대선은 미국 50개 주에서 치러지는 연방선거이기 때문에 연방법 관할이다. 뉴욕주 법원에서 혐의를 따질 수 없다는 얘기다. 맨해튼검찰은 이에 경범죄인 ‘사업 기록 위조’ 혐의를 중범죄로 격상시키는 승부수를 택했다. 뉴욕주에선 범죄를 돕거나 은폐하려는 의도가 있을 땐 경범죄에도 중죄를 물을 수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를 우선 문서 위조로 기소하고, 그 목적이 선거와 관련됐다고 언급해 ‘연방선거법 위반’도 엮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검찰은 특히 법원에 사실 관계 문건을 별도로 제출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전에도 ‘입막음 돈’을 남발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문건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절친한 데이비드 페커 아메리칸미디어(AMI) 최고경영자(CEO)의 잡지가 그에게 불리한 가십의 독점보도 권리를 사들이는 수법으로 불륜 상대였던 모델 등 2명의 입을 막았다는 내용이 담겼다.
불리한 정보를 매체가 사들여 이를 보도하지 않고 덮어버리는 ‘캐치 앤드 킬’ 수법을 쓴 것이다. AMI가 ‘트럼프한테 혼외 자식이 있다’던 트럼프월드타워 경비원의 주장이 허위임을 알고 3만 달러 계약을 해지하려 하자,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이 “대선까지 기다리라”고 지시한 점도 인용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받는 혐의는 뉴욕주에서 가장 낮은 E급 중죄다. 건당 최대 4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어 산술적으로는 최대 136년 형까지 가능하다. 그러나 ‘은폐 의도’ 입증이 쉽지 않다. 랜디 젤린 미국 코넬대 로스쿨 교수는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돈을 건넸다고 해명하면 그만”이라고 지적했다.
유죄 판결이 나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NYT는 “(트럼프가) 초범에다 차기 대선 후보 중 한 명이라는 점이 감안돼 집행유예 처분이 유력하다”고 내다봤다. 또 미국 헌법상 대통령 후보 조건은 35세 이상, 시민권자, 최소 14년 이상 미국 거주가 전부이기 때문에 유죄가 선고된다 해도 내년 대선 출마에는 문제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