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농심만 흔들어"... 양곡관리법 개정 무산에 뿔난 농민들

입력
2023.04.06 04:00
전남·강원·충남·경북서 농민단체 규탄
"안전장치 거부…쌀 정쟁 수단 전락"
설득력 갖지 못한 무리한 입법 지적도
양곡법은 미봉책…근본적 대책 내놔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농민들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대부분의 농민 단체는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농업 포기 선언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쌀 수요 감소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함께 제시돼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구조적 원인에 대한 해결책을 외면한 채 미봉책으로 접근한 정치권에 농심만 휘둘린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농민단체 전국 각지서 거부권 규탄 기자회견

5일 농민들은 최대 규모의 농민단체인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을 중심으로 지역별 기자회견을 하고 윤 대통령의 양곡관리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를 비판했다. 먼저 전농 경북도연맹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윤 대통령은 농업을 포기하고 농민들을 배신했다”면서 “우리 농업을 포기한 윤석열 정부에 맞서 양곡법 전면개정 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정치권이 농민들을 이용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농 강원도연맹 등 5개 강원지역 농민단체도 “쌀값 폭락과 영농비 폭등, 농가 부채 증가로 농민들은 재난 상황에 직면했다”면서 "그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과 집권 여당, 거대 야당은 농민의 생명줄인 쌀값을 정쟁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고 비판했다.

당초 국회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비판적인 농민들은 기존보다 강화된 양곡관리법 전면 개정안 처리를 들고나왔다. 전농 광주전남연맹 등 전남 지역 농민단체들은 이날 전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농민들은 생산비가 보장된 양곡관리법 개정을 요구했으나 이를 무시한 개정안이 누더기가 돼 국회를 통과했다"면서 "쌀 목표 가격제로 양곡관리법을 전면 개정하라"고 촉구했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5%이거나 전년 대비 쌀값이 5∼8% 하락할 때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전량 매입하는 내용이 핵심이지만 농민들은 이 역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김명기 전국쌀생산자협회 회장은 "쌀값은 식량안보와도 직결된 문제"라며 "농민들도 필사적으로 맞서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양곡법 근본 대책 아냐…농업 정책 전반 손봐야

전문가들과 일부 농민들은 쌀 산업 구조 변화에 맞춘 근본적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동시에 제기한다. 쌀 소비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인구까지 급격히 감소하는 상황에서 이번과 같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으로 문제를 풀기에 애초부터 한계가 뚜렷했다는 얘기다.

당장 시장격리 의무화를 담은 양곡관리제 개정안도 부농과 영세농 입장에서 차이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6개 농민단체로 구성된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한종협) 관계자는 "전체 농가 73%가 경지 규모 1㏊ 미만을 보유한 소농”이라며 “시장격리를 통해 쌀값을 높인다고 하더라도 대다수인 영세 농가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쌀 의무 격리에 매년 1조 원 안팎의 혈세를 투입하는 것보다 식량 자급률 향상에 도움이 될 만한 대체 작물 재배 지원이나 청년농 육성 등의 투자 필요성을 주장한다. 송경환 순천대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청년농 육성 정책의 경우 정부가 장려하는 스마트팜을 짓기 위해 30억 원 정도가 필요한데 이 중 최소 10%를 스스로 부담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며 "하지만 현실적으로 3억 원의 자산을 가진 청년농을 찾아보긴 어렵다. 이런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보다 세밀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종협 관계자도 "쌀값 문제는 구조적 생산 과잉보다 소비 수요가 줄고 있는데서 기인한다”며 “시장 격리 의무화보다는 정부가 적정 생산 면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논타작물 재배 지원사업을 확대하고 쌀 가공산업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축산단체협의회도 “쌀 시장격리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것은 전체 농민들”이라며 “쌀 이외 타품목과의 형평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안= 김진영 기자
안동= 정광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