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정부를 대표해 '3대 주력기술 초격차 연구개발(R&D) 전략'을 발표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차세대전지를 가장 먼저 개발해야 할 3대 기술로 선택하고 정책 역량을 집중키로 했다.
이번 전략의 가장 큰 특징은 정부와 민간기업 간 협력이다. 정부는 3대 분야 기업들의 R&D 활동을 지원하고 기업들은 정부 정책에 목소리를 낸다. 이 장관은 "이 기술들은 세계적으로 승자독식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면서 "민간 영역과 정부 협업으로 R&D 투자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①민‧관 연구 협의체가 만들어진다. 과기정통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민간 기업, 학계 인사들이 참여한다. 올해 상반기 출범을 목표로 참여 기업들을 조율하고 있다. 협의체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기초·원천 기술과 응용기술, 상용화 단계를 한데 모을 방법을 찾는다.
②2027년까지 총 160조 원 규모 민관 R&D 자금도 투자한다. 단, 해당 금액 전부가 세금으로 투입되는 것은 아니다. 156조 원은 개별 기업들이 쏟아붓는 자체 연구개발 비용이다. 국가 R&D 사업을 위해 들어가는 정부 세금은 약 4조5,000억 원 규모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기업 투자에 세제를 지원하고 고급 인력을 양성하는 정책으로 R&D 효과를 높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③고급인력 양성 방안으로는 연구 거점을 늘리고 계약학과 수를 늘릴 계획이다. 실무에 바로 뛰어들 수 있는 전문 인력을 키워내는 것이 목표다. 예를 들어 반도체 계약학과 정원을 증원하거나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관련 계약학과를 새롭게 설치하는 방법이 있다.
정부는 최근 삼성전자(반도체) LG에너지솔루션(이차전지) 네이버(인공지능) CJ제일제당(첨단바이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우주항공)가 참여하는 국가전략기술 특별위원회도 출범시켰다. R&D 지원 정책에 민간 영역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서다.
기업들은 정부 정책 흐름에 환영하는 입장이다. 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반도체산업의 고질적인 인력부족 문제와 R&D 사업 지원에 관심을 두고 기업 목소리를 반영하는 자체가 긍정적인 일"이라며 "기업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미중 갈등 대응책이나 세제 지원에도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류성원 한국경제연구원 산업전략팀장도 "첨단 기술을 정부가 통제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민간 기업 목소리를 정책에 넣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우려도 있다. 정부가 발표한 160조 원 '민관 R&D 자금' 중 실제 정부가 투입하는 돈은 4조5,000억 원(약 2.8%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나머지는 모두 기업이 자체 자금을 넣는 만큼, 정부가 '민‧관 R&D 자금 투자'라는 표현으로 생색을 내기엔 부족하고 더 적극적인 정책자금 투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다만 산업계에선 이에 대해서도 "정부가 생색을 내는 것은 상관없다. 태클이나 안 걸면 된다"는 의견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