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반도체 고래싸움에 낀 한국… 마이크론 사태 '진퇴양난'

입력
2023.04.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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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미국 마이크론사 안보 심사 결정에
SCMP "한국과 일본에 보내는 경고 신호"
미국의 '칩4' 동맹국 한국 고민도 깊어져

미국과 중국 간 '반도체 패권 경쟁'이 날로 격화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미국의 대중국 첨단 반도체 수출 규제 시행 이후 그동안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아 왔던 중국이 최근 대대적 반격에 나선 탓이다. 미국의 최대 메모리 반도체 생산업체인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에 대해 인터넷 안보 심사를 하겠다며 규제의 칼을 뽑아 든 것이다.

문제는 미중 사이에 끼인 한국의 딜레마도 깊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마이크론 심사'에 대해 한 외신은 "한국과 일본 등 이웃 나라에 보낸 경고 신호"라고 분석했다. 한국은 미국 주도의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칩4'(한미일 및 대만)의 일원인 동시에 생산 핵심 시설을 중국에 두고 있다. 칩4의 다른 3국과 달리, 반도체 산업과 관련해 미중과의 상성뿐 아니라 동맹, 역사, 지정학적 변수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얘기다.

미국 편에 선 일본… "마이크론 심사는 한국에 대한 경고" 분석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3일 상하이 소재 반도체 회사인 IC와이즈의 왕리푸 분석가를 인용해 "미국과 동맹국들에 의해 포위된 중국의 '마이크론 조사' 결정은 한국과 일본에 보내는 경고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왕리푸는 SCMP 인터뷰에서 중국에 여전히 반도체 제조 시설을 두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거론한 뒤, "특히 한국이 중국의 마이크론 조사에 주목할 것"이라며 "이번 방침은 미국의 행동을 따르지 말라는 메시지"라고 밝혔다. 네덜란드와 일본 등 반도체 강국이 미국에 동조한 상황에서 중국이 한국을 압박하기 위해 강경책을 내놓았다는 의미다.

앞서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 산하 인터넷안보심사판공실은 지난달 31일 "마이크론의 중국 내 판매 제품에 대한 인터넷 안보 심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마이크론의 안보 위험성을 근거로 제재 여부와 수위를 정하겠다는 뜻이다. 현지에선 천문학적 과징금은 물론, 시장접근 금지조치 등이 발동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 같은 조치는 미국의 대중 규제에 대한 맞대응 성격이 짙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8월 '반도체 칩과 과학법'(반도체법)을 통과시켜 중국에 대항하기 위한 자국 반도체 산업 보호의 틀을 만들었다. 2개월 후에는 중국 반도체 기업에 첨단 반도체 장비 판매를 금지하는 '수출규제 조처'도 발동키로 했다. 미국은 이후 일본과 네덜란드 등을 상대로 동참을 요구했다.

불안의 징후? 닛케이지수 상승, 코스피지수는 하락

실제 두 나라는 이에 호응하는 분위기다. 일본은 지난달 말 '중국'을 명시하진 않았으나 미 반도체법과 판매 금지 조처에 호응하는 방향으로 23개 첨단반도체 품목의 수출 규제를 강화하는 법률 하위 규정을 개정해 7월부터 시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네덜란드도 지난달 초 "특정 반도체 생산 장비 수출 통제를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며 미국에 보조를 맞추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미중 갈등으로 곤혹스러운 건 한국이다.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진퇴양난 처지에다, 시간도 많지 않다. 중국 현지 공장 생산 반도체 부품에 대한 미국의 수출 규제 유예기간은 올해 9월로 종료된다. 업계는 중국의 마이크론 심사도 빠르면 한 달, 늦어도 올해 안에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불안감은 시장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이날 한국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 종가 기준 0.18% 하락했다. 반면 일본 닛케이지수는 0.52% 상승했다. 중국의 '경고장'을 함께 받은 '칩4' 일원이지만 미국 편에 선 일본과는 달리, 한국 반도체 시장의 위험성은 남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정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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