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커보크라시'에 맞서다

입력
2023.04.1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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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오 헨리의 '포 밀리언'

‘니커보커(knickerbocker)’는 19세기초 뉴욕 상류층을 가리키는 말로, 워싱턴 어빙(Washington Irving)의 ‘뉴욕의 역사(A History of New York, 1809년)’에 등장하는 노신사 디드리히 니커보커에서 유래했다. 니커보커는 유럽 귀족문화의 신대륙 계승자라는 선민의식을 공유한 부유한 지주-거상들이었다. 그들이 ‘개츠비 시대’라고도 하는 19세기 말 ‘도금시대(Gilded Age)’ 상류문화의 주역이었고, 당시 뉴욕 사교계를 이끈 '미시즈 애스터(Caroline Astor)'의 살롱에 초대되던 이른바 ‘포 헌드레드(The Four Hunderd)’였다.

저 숫자는 당시 명문가 출신 사교계 명사 워드 매컬리스터(Ward McAllister, 1827~1895)에 의해 대명사처럼 굳어졌다. 그는 ‘근본 없는 신흥 갑부들’ 즉 개척시대 서부에서 철도나 탄광사업으로 벼락부자가 된 뒤 동부로 와서 저택을 짓고 사교클럽을 기웃대던 이들과 자신들을 차별화하기 위해 한 매체에 “뉴욕에서 주목할 만한 시민은 400명밖에 없다”고, “상류층 연회에 초대받는 명사도 그 정도”라고 썼다.

숫자의 진위를 두고 논란이 일자 그는 1892년 2월 뉴욕타임스에 자칭 ‘공식 명단’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런 과도한 현시욕 때문에 그는 시민들뿐 아니라 사생활을 중시하는 일부 상류층으로부터도 외면당했지만, ‘포 헌드레드’는 뉴욕판 귀족주의쯤으로 번역될 ‘니커보크라시(knickerbocracy)’란 용어와 함께 지금도 더러 언급된다.

미국 단편 작가 오 헨리(O.Henry, 본명 William Sidney Porter)가 1906년 4월 10일 출간한 두 번째 작품집 제목을 '포 밀리언(The Four Million)’이라 정한 건, 당연히 ‘포 헌드레드’들의 우쭐댐을 겨냥한 거였다. 400만 명은 당시 뉴욕 인구였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