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발생한 40대 여성 납치ㆍ살해 사건의 피의자 3명이 42시간 만에 붙잡혔다. 하지만 금전(가상화폐) 탈취라는 대강의 범행 목적만 드러났을 뿐, 구체적 범행 동기와 6시간 행적, 배후 여부 등 의혹은 꼬리를 물고 있다. 범인들이 2, 3개월 전부터 범행을 치밀하게 준비했고, 피해자 신상을 정확히 알고 있었으며, 일반인은 취급이 어려운 주사기 등을 사용한 점으로 미뤄 공범이나 조력자가 있을 정황, 또 ‘청부살해’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1일 경기 성남과 서울 강남 논현동에서 잇따라 체포한 A(30ㆍ무직)씨와 B(36ㆍ주류회사 직원)씨, C(35ㆍ법률사무소 직원)씨 등 납치ㆍ살해 피의자 3명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3일 오전 열린다. 이들은 지난달 29일 오후 11시 46분쯤 강남구 역삼동 아파트단지 앞에서 40대 여성 피해자를 납치해 이튿날 살해하고 대청댐 인근 야산에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는다.
최대 관심은 일당이 피해자를 왜 표적으로 삼았느냐는 것이다. ‘키맨’은 피의자 중 유일하게 피해자와 안면이 있는 C씨다. 범행에 가담한 A, B씨는 피해자와 일면식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조사 결과 C씨가 먼저 피해자를 범행 대상으로 지목한 뒤 대학 동창인 B씨에게 범행을 제안했고, B씨는 다시 “3,600만 원 상당의 빚을 갚아주겠다”며 A씨를 끌어들였다. 두 사람은 과거 배달대행 일을 같이 하며 안면을 텄다.
A씨는 수사 초기 가상화폐 탈취를 목적으로 범행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묵비권을 행사하던 B씨도 2일부터 조금씩 협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범행 전후관계의 열쇠를 쥔 C씨다. 그가 여전히 입을 다물어 경찰은 정확한 범행 동기를 밝혀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단 조력자가 있을 정황이 포착됐다. C씨가 체포된 장소, 강남구 소재 성형외과가 근거다. 그는 해당 병원에 근무하는 지인을 통해 마취제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날 재차 병원을 찾아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보했다. 피해자가 과거 가상화폐에 투자했다는 사실이 공개돼 C씨와 투자 관계로 연결된 사이일 수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범행 전 과정을 진두지휘한 공범 내지는 주범의 존재 여부도 규명돼야 한다. C씨가 윗선으로부터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건네받아 범행했다는 시나리오다. 미상의 공범이 여성이란 얘기도 오르내린다. 아울러 경찰은 이들 일당이 2, 3개월 전부터 살해를 계획하고 피해자를 미행한 끝에 납치했다는 점에서 청부살인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경찰은 현재로선 전문적인 범죄 조직 소행 쪽에는 무게를 싣지 않고 있다. 범인들이 도주 과정에서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를 이용하고 현금과 대포폰만 쓰며 추적을 피하려 나름 머리를 굴렸지만, 허술한 구석도 곳곳에서 엿보인 탓이다. 가령 CCTV가 여러 대 설치된 강남의 고급아파트 단지에서 피해자를 납치한 것이나, 자정에 가깝긴 해도 충분히 눈에 띄는 시간대를 택한 사실 등이 그렇다. 실제 사건 발생 직후 “살려 달라”는 피해자의 외침을 들은 주민들이 112에 바로 신고했다.
피의자들이 서울을 빠져나간 지난달 30일 0시부터 시신을 유기한 오전 6시까지 행적도 미스터리다. 특히 살해 방법과 장소, 시점 모두 오리무중이다.
경찰은 서울에서 대전으로 이동할 때 범인들이 피해자에게 가상화폐 송금을 강요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경찰이 사건 다음 날 찾아낸 범행 차량 안에서 고무망치와 주사기, 핏자국 등이 발견된 점을 감안하면 물리적 폭력을 동반한 협박이 이뤄졌을 수도 있다. 다만 피해자 부검 구두소견 결과는 ‘사인에 이를 만한 외상이 보이지 않고 질식사가 의심된다’고 나왔다. 직접적 사망 원인은 질식사라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