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가 성별 임금 격차를 줄이려 '성별 임금 공시제도'를 도입한 국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1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여성과 남성의 임금 차이를 정기적으로 공개하도록 법을 바꾸면서다. 호주를 비롯해 전 세계 각국이 속속 이런 결단을 내리는 이유는 뭘까. 성차별 해소가 마땅히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는 추상적 명분 때문만은 아니다.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결국 여성 노동력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실리적인 판단'에서다.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호주 정부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이 같은 내용의 '직장 내 성평등법 개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지금은 산업별로만 임금 격차가 발표되지만, 새 법은 개별 사업장에서 1년 단위로 이를 공개하도록 한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돈을 받아야 한다. 간단하다"고 법의 취지를 설명했다. 올해 1월 기준 호주의 성별 임금 격차는 13.3%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지만,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1.9%)을 웃돌고 있다는 위기감이 컸다.
호주의 미래일센터(Centre for Future Work)의 조사에 따르면 모든 직업의 95%에서 여성보다 남성의 평균 소득이 높았다. 여성이 다수인 직업군의 87%에서도 남성의 급여가 높았다. 심지어 조산사도 남성이 여성에 비해 18.9%의 급여를 더 가져갔다.
남성이 더 '어렵고 고된' 일을 하기 때문일까. 관련 연구를 수십 년간 해온 미국 코넬대 경제학자 프란신 블라우에 따르면 같은 경력을 갖고 같은 직업에서 같은 시간을 일해도 여성은 남성 동료보다 8% 적은 임금을 받는다. 블라우는 "우리는 이를 설명할 수 없는 급여 격차라고 부른다"면서 "아니면 그냥 '차별'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별 임금 공시제는 이런 '설명할 수 없는 급여 격차' 해소를 위한 출발점이다. 호주는 꾸준히 여성과 남성의 임금 격차를 줄이려 노력했으나, 2018년 이후 관련 수치가 15% 안팎을 유지하며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자 제도를 전격적으로 바꿨다. 제니 맥앨리스터 호주 기후변화부 장관은 스카이뉴스에서 "성별 임금 격차는 호주 여성들의 재능 낭비"라고 꼬집었다. 호주 정부는 여성 임금이 저평가되면서 연간 518억 호주 달러(약 45조 원)의 경제적 손실이 난다고 본다.
이는 세계적 흐름이기도 하다. 유럽연합(EU)도 지난달 30일 같은 일을 하는 모든 노동자의 성별 평균 급여 내용을 공개하는 규칙을 통과시켰다. 또 성별 임금 격차가 5%를 초과하는 기업은 이를 시정하도록 강제했다. 이미 영국과 스위스, 프랑스는 각각 250명 이상, 100명 이상, 50인 이상 사업장에 관련 수치를 발표할 의무를 뒀다. 10인 이상 사업장에서 성별 임금을 조사해 분석하는 스웨덴에선 노동자가 원할 경우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스웨덴의 성별 임금 차이는 2011년 14.1%에서 지속적으로 감소해 2021년에는 9.9%를 기록했다.
단순한 임금 격차 공개를 넘어 '다음 단계'를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호주 시드니대 성별 노동관계 전문가인 래 쿠퍼 교수는 "임금의 투명성이 높아지면 성별 격차가 줄어든다"면서도 "공개 단계에서 멈추면 안 된다. 실제로 차이를 만들어가려면 전략적인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반면 '성별 임금 격차 부동의 1위' 한국은 노동자의 성비를 외부에 공개하는 성별 근로 공시제를 공공부문에서 우선 도입한다고 밝혔으나, 성별 급여 등은 공개 대상이 아닌 데다가 자율 권고에 그칠 전망이다.